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도시정비법상 사실상 사문화된 조문 중의 하나인 임시수용시설 설치에 관한 조문의 문제점과 그 개정방향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간략히 밝히기로 한다.
도시정비법 제36조제1항은 사업시행자가 주거환경개선사업 및 재개발사업의 시행으로 철거되는 주택의 소유자 또는 세입자에 대해 해당 정비구역 내·외에 소재한 임대주택 등의 시설에 임시로 거주하게 하거나 주택자금의 융자알선 등 임시수용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현실적으로 임시수용시설 설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택자금의 융자알선 등으로 그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보는 것이 통례이므로 사업시행자가 임시수용시설을 실제로 설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정비법 제36조 및 제37조에서는 사업시행자가 임시수용시설을 설치하는 경우에 적용해야 할 사항을 자세히 규정하고 있으나 그 실효성은 거의 없다. 즉 도시정비법은 사업시행자가 임시수용을 위해 필요한 때에는 국가·
지자체 그 밖의 공공단체 또는 개인의 시설이나 토지를 일시로 사용할 수 있다(제36조제1항 후문). 특히 국가 또는 지자체는 사업시행자로부터 임시수용시설에 필요한 건축물이나 토지의 사용신청을 받은 때에는 그 건축물이나 토지에 관해 제3자와 이미 매매계약을 체결한 경우, 사용신청 이전에 사용계획이 확정된 경우 및 제3자에게 이미 사용허가를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를 거절하지 못한다. 또한 이 같은 경우 그 사용료 또는 대부료는 면제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6조제2항).
임시수용을 위해 필요한 시설이나 토지가 지자체를 제외한 공공단체 또는 개인의 소유인 경우 사업시행자는 해당 소유자와 성실하게 손실보상 협의를 진행해야 하며, 협의가 성립되지 않거나 협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사업시행자 또는 해당 시설이나 토지의 소유자 누구라도 관할 토지수용위원회에 재결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7조제1항 및 제2항). 이 경우 손실보상에 관해 토지보상법이 준용되므로(제37조제3항) 사업시행자는 관할 토지수용위원회가 재결한 손실보상금을 지급하거나 공탁한 후 해당 시설이나 토지를 사용할 수 있고, 관할 토지수용위원회의 재결에 대해 이의가 있는 자는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이의를 신청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해 보상금의 증감을 다툴 수 있다. 행정소송을 제기하고자 하는 자가 손실을 받은 자인 경우에는 사업시행자를, 사업시행자인 경우에는 손실을 받은 자를 각각 피고로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우리 헌법은 제23조에서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해 예외적인 경우 공공필요에 따라 재산권자의 의사에 반하는 재산권의 강제 사용도 형식적 법률에 의해 가능하도록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도시정비법 제36조제1항의 규정에 따라 임시수용시설 설치를 위한 타인 소유의 시설이나 토지의 강제 사용이 인정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으나 실제로는 이런 사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법 체계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우선 도시정비법은 제40조에서 정비구역 안에서 정비사업의 시행을 위한 수용 또는 사용에 관해 토지보상법을 준용하도록 하면서, 사업시행인가의 고시가 있은 때에는 토지보상법상 사업인정 및 그 고시가 있은 것으로 간주하는 조문을 두고 있으나, 동법 제36조제1항의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는 조문이 없다. 만일 사업시행자가 정비구역 밖의 타인 소유의 시설이나 토지를 강제 사용하고자 한다면 토지보상법상 공익사업에 해당해야 하고(토지보상법 제4조), 국토부장관으로부터 별도의 사업인정을 받아야 한다(토지보상법 제20조). 더 나아가 사업인정고시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토지를 사용하는 기간이 3년 이상인 때, 토지의 사용으로 인해 토지의 형질이 변경되는 때 등에 해당하는 경우 해당 토지소유자는 사업시행자에게 그 토지의 매수를 청구하거나 관할 토지수용위원회에 그 토지의 수용을 청구할 수 있다.(토지보상법 제72조) 이를 토대로 보면 사업시행자가 임시수용시설의 설치를 위해 지자체를 제외한 공공단체 또는 개인의 시설이나 토지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도시정비법 제36조제1항과 제37조만으로는 사업시행자가 임시수용시설의 설치를 위해 공공단체 또는 개인의 시설을 강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 관념에 반할 뿐만 아니라 법률 체계적으로도 작동하기 어렵다. 현행 도시정비법 제36조제1항과 제37조를 개정해 이를 보완하거나 폐지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