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도시정비조례개정, 주민제안제 유지

정비구역지정 제안→정비계획수립 제안

말만 다르고 내용은 같아, 개정하나 마나

그동안 각종 문제제기로 폐지가 검토되던 정비구역지정 주민제안제도가 문구만 약간 손질한 채 그대로 살아남아 빈축을 사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26일 정비구역지정 제안제도를 정비계획수립 제안제도로 바꾸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도시정비조례를 개정해 공포했다.

개정 조례 제6조제1항에 따르면 서울시 도시․주거정비기본계획에 따른 단계별 정비사업추진계획상 정비계획의 수립시기가 1년 이상 지났음에도 정비계획이 수립되지 않으면 토지등소유자 2/3이상의 동의를 거쳐 정비계획수립을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는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그동안 조례운영상 나타난 미비점을 보완해 정비사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조례를 개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정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울시의 이러한 주장이 과연 사실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동안 관련 전문가들과 청렴위로부터 정비구역지정 주민제안제도는 서울시 도시정비조례 제6조가 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법에서 지자체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정비구역지정 업무를 주민들에게 미루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또 추진위 단계에서 이해관계자들이 비리에 연루되는 등 각종 문제점도 발생해 왔다.

이에 시는 조례 제6조를 삭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도시정비조례 개정안을 지난해 9월 입법예고 했었다. 그러나 입법예고 중간에 도시․주거정비기본계획에 따른 단계별 정비사업추진계획상 정비계획의 수립시기가 1년 이상 지나도 정비계획이 수립되지 않으면 정비구역지정을 제안할 수 있도록 내용을 슬그머니 바꿔 서울시 조례․규칙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시켜 전문가들의 반발을 불러왔다(본지 2007.10.23자 9면 참조).

이러한 반발을 고려한 듯 이번 개정 조례에서는 정비구역이 아니라 정비계획의 수립을 제안할 수 있도록 했으나 결국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조례 제6조를 개정하면서 제목을 ‘정비구역지정의 입안을 위한 주민제안’이라고 해 개정 전 조례의 제목을 그대로 유지했다.

또 제안의 주체에서 추진위를 삭제하기는 했지만 추진위의 구성원이 토지등소유자이므로 추진위가 2/3이상의 동의서만 걷으면 되기 때문에 동의요건만 예전 1/2에서 2/3으로 높인 의미 밖에는 없다.

결정적인 것은 주민제안제도가 비판을 받았던 것이 정비계획의 수립이나 정비구역의 지정은 지자체의 권리이자 의무로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법의 아무런 위임도 없이 이를 주민에게 미루는 것이었다. 아무리 정비사업의 빠른 추진을 위한 것이라는 변명을 해도 변명에 그칠 뿐 지자체가 자신의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전문가는 “개정 내용을 보면 주민제안제도가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며 “법에서 주민제안제도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한 조례에서 어떤식으로든 이를 정하면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주민제안제도는 삭제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