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 이래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개발사업은 토지구획정리사업이었는데, 사업의 대상이 토지이고 목표도 토지의 구획을 반듯하게 정리하는 것이었다. 물론 필지만 반듯하게 만든 사업은 아니었고, 도로나 학교 같은 시설을 설치했지만 주로 도시 내 새로운 주택단지를 위한 택지조성 사업이었다. 1900년대 전반부 한국의 시가지는 특별히 건물을 대대적으로 정비할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시가화를 촉진하기 위해 택지조성사업이 더 필요한 것이라 인식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에 이르면 해방 후 서울로 몰려든 인구들로 인해 급격하게 불량정착촌이 생겨나고, 도심을 중심으로 이를 정비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도시재개발사업이 진행된 곳은 그래서 도심지였으며, 다만 업무시설 위주로 건축되어 있는 지금과는 달리 도심지의 불량정착촌이 정비대상이었다. 1960년대 후반 도시계획법의 일부를 배정받아 구청이 시행자가 되었던 불량정착촌 정비사업은 1970년에 도시재개발법의 제정으로 독립된 법률체계를 갖추게 됐다. 동법의 제정으로 사업에 반대하던 토지 또는 주택소유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조합을 설립하고 조합이 사업시행자가 되도록 제도가 개편되자, 행정청대 주민의 대립구도가 소유자대 세입자의 갈등구도로 변화됐다. 그 후 1980년대 중반에 이르면 건설회사를 사업파트너(참여조합원)로 삼아 재개발을 시행하는 합동재개발이 법적 근거를 마련해 널리 시행되면서 재개발사업도 민간사업이라는 관념이 생겨나게 됐다.
이에 비해 사업성이 없는 재개발구역들이 건설회사를 찾지 못해 오랜 기간 방치되자 이를 위해 ‘도시저소득주민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임시조치법’이 제정되면서 자력재개발을 규율하게 된다. 자력재개발은 주민의 증개축을 위주로 공공부문에서는 도로나 공원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는 사업방식을 말하는데, 이 법의 제정으로 합동재개발과 자력재개발은 그 법적 근거를 달리 하면서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쇠퇴하고 도시재개발사업이 가장 빈번하게 활용되는 개발사업으로 평가됐지만, 1990년대 종반에 이르면 그 자리는 다시 강남을 중심으로 진행된 재건축사업이 넘겨받는다. 도시정비법이 제정되는 2002년에는 이미 건설사들의 관심사는 재건축에 집중되어 사업장이나 수입구조면에서 재건축이 압도적이었고, 재개발은 경기도와 강북의 일부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재건축은 한편으로 2003년 도시정비법의 시행 그 자체로 인해 또 다른 한편으로 참여정부의 강력한 억제책에 의해 다시 휴면기를 맞게 됐으며 2010년에 이르러서도 재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될 여건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2002년 시작된 강북 뉴타운정책은 2000년대 중반 ‘재정비특별법’의 제정으로 이어졌으며, 개건축에서 활로를 잃은 건설사와 부동산자금이 다시 강북과 강서의 뉴타운사업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뉴타운사업은 처음부터 법적 근거가 없이 시작된 사업이기 때문에 과도한 지분쪼개기로 사업성이 거의 없으며 광역적 정비사업이라는 점에서 사업의 복잡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제 재개발사업은 촉진법을 빼 놓고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 개의 법률은 상호 긴밀하게 작동하고 있다. 특해 촉진사업 또는 뉴타운이 재개발구역지정요건을 현저히 완화시켜 놓고 있어 법적 혼란이 극한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하나의 법률만으로도 해석이 어려우므로 두 개의 법률이 서로 모순되면 해결책을 찾는 것이 무척 어렵다. 현재 뉴타운이 교착상태에서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