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적인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 시기의 보장으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부셔 버리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테세우스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티카 전설 속의 위대한 영웅인 테세우스는 많은 모험을 하게 되는 데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크레타의 전설적인 미궁에 살고 있는 반인반우(半人半牛)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와의 대결이다. 테세우스는 만약 자신이 크레타에서 이기고 돌아오게 되면, 미노타우로스에게 바쳐질 희생자들을 싣고 다니는 죽음의 배가 바다로 전진할 때 꽂고 다니는 검은 돛 대신 하얀 돛을 올리겠다고 그리스왕이자 아버지인 아이게우스에게 약속했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이 약속을 그만 잊어버리고 검은 돛을 단 채 돌아오게 되며, 이것을 발견한 아버지 아이게우스는 아크로폴리스에서 몸을 던져 죽는다.

이 테세우스가 젊은 시절 아버지 왕을 찾아가는 중 하숙집 주인 겸 강도인 ‘프로쿠르스테스’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쇠로 만든 침대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다. 프로쿠루테스는 여행자들이 자기 하숙집에 묵게 되면 쇠로 만든 침대에 눕혀 침대보다 신장이 짧으면 늘여서 죽이고, 침대보다 길면 다리를 잘라 죽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후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는 자신의 일방적인 기준으로 독선적인 아집이나 배타적인 편견을 소유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한다.

재건축․재개발사업(이하 ‘정비사업’이라 한다)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시공자 선정 시기’의 조작(操作)이다.

경기과열의 조짐이 보이면 시공자 선정 시기를 늦추고, 그 반대현상이 일어나면 그 선정 시기를 앞당기는 등 주택경기를 조절하는 임무를 자처하는 정부의 행태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로 보이는 것은 필자의 지나친 기우인가.

재건축․재개발사업은 1980년대부터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라 한다)이 시행될 때까지 서로 다른 법률에 의해 진행해 왔으며, 정부는 시공자들과 재건축․재개발조합들과 공동으로 시행하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강남을 중심으로 한 재건축사업을 선두로 주택경기가 과열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참여정부는 칼을 빼들 명분을 갖게 되었고, 이 와중에 만들어진 법이 도시정비법이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시공자 선정 시기를 늦추거나 앞당기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도시정비법 시행 이전에 시공자를 자유롭게 선정하여 왔으나, 2003.7.1부터는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에야 선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시공자를 선정한 재건축사업보다는 재개발사업이 더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필자는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 시기를 앞당기도록 주장한 바 있다. 결국 2005.3.18 재개발사업에 한해서 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선정하도록 개정되었지만 재건축사업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묶어 두었다. 또다시 재개발사업이 움직이게 되자 2006.6.24 재개발사업 등은 조합설립인가 단계로 묶어 버리면서 역시 재건축사업은 그대로 두었다.

비대해진 정비업자 등의 시공자 선정 비리로 인해 시공자와 조합의 피해 더욱 심해져

전통적으로 정비조합의 자금을 대 주면서 사업을 좌지우지하던 시공자들은 도시정비법의 시행 이후로 조합의 파트너가 아닌 도급업자로 전락한 것은 한번쯤은 겪어야 될 대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공자의 빈자리를 채워 줄 것을 기대하고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이하 ‘정비업자’라 한다)란 제도를 만들었다. 정비업자는 시공자 선정 때까지 조합에 자금을 대주고, 시공자를 선정하는 업무를 대행하도록 권한까지 부여했다. 능력에 비해 그 권한이 비대해진 정비업자의 타락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자금조달을 위하여 철거업체에 손 내밀고 시공자 선정만을 위한 정비업체가 생겨나게 되면서 시공자들은 이들에게 눈치를 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시공자 선정의 대가로 수십 억 원을 요구하면서 뇌물수수죄로 처벌되는 등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해 정비업체가 아닌 일명 기획수주업체(OS업체)가 등장하였다. 이는 자생적으로 만들어졌으나, 뇌물죄로 같이 처벌받아야 하는 시공자들의 대비책이기도 하였다. 정비업체로 등록하지 않고 시공자 선정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의 신종 범죄에 대해서는 도시정비법 제84조의2제1호로 처벌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공자 선정 시기의 임의적 조절은 새로운 범죄를 만들어 낸다. 더 이상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와 비유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규제완화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는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 시기는 자율적으로 맡겨야 한다. 우선 단계적으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묶여 있는 재건축사업에 대한 시공자 선정 시기부터 조합설립단계로 앞당겨 숨통을 터주어야 한다. 새 정부 들어서서, 정부도 아집에서 벗어나고 이해관계인들도 범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