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재는 경찰관의 모습과 기타를 든 긴 머리의 청년이 경찰관에게 끌려가는 화면을 TV에서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경찰관이 이런 단속을 한다면 어떨까?

그런데 서울시가 건축물과 가로 디자인에 이런 식의 단속을 하겠다고 한다. 서울시는 공공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니 이 정책에 사활을 걸고 있는 듯하다. 각종 디자인가이드라인을 정하고 건축심의와 옥외광고물 등의 각종 심의에서 가이드라인에 못 미치는 디자인은 가차 없이 반려하고 있다.

서울시 건축심의에서는 지난해 8월부터 최근 4월까지 한 번에 심의를 통과한 계획안은 단 한건도 없었고, 최대 5번, 평균 3번의 심의를 받아야만 겨우 조건부로 통과되었다.

5번의 심의에서 통과된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의 경우도 “디자인가이드라인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디자인이 크게 업그레이드되었기에 조건부로 통과되었다”고 한다. (헤럴드경제 2007. 09. 21자 참조)
그나마 1차 심의 반려 후 4개월 만에 2차 심의를 통과한 영등포구 도림동 제16구역의 경우, 작년 12월에 1차 심의에서 반려되어 건축위원회 산하 디자인소위원회의 자문을 2차례나 받아 3월의 2차 심의에서 계획안이 통과되었다. 결국 심의 2번, 자문 2번을 받아 통과되었다. 그러나 민원인의 입장에서 보면 심의나 자문이나 그게 그거고 다 행정 규제에 해당한다.

서울이 세계적으로 디자인이 우수한 도시가 된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법률이 아닌 행정지침으로 정하고,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건축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디자인을 통제하는 것이 옳은지는 한번 고려해 보아야 한다.

건축위원회는 건축허가권자와 담당공무원들이 전문성이 없다보니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단순 자문기구이므로, 건축위원회의 결정을 건축허가권자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2000. 3. 14. 선고 98두4658 판결) 그러나 현실은 건축위원회가 아주 막강한 의사결정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건축법에서는 건축위원회에서 검토하고 논의해야하는 사항은 이번 서울시의 디자인가이드라인에 계획안이 적합한지 여부 같은 건축디자인의 질적인 판단이 아니고, 건축 관련 법규에 계획안이 위반한 사항은 없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법원에서도 “건축허가권자는 건축허가신청이 건축법 등 관계 법규에서 정하는 어떠한 제한에 배치되지 않는 이상 당연히 같은 법조에서 정하는 건축허가를 해야 하고,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요건을 갖춘 자에 대한 허가를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제한사유 이외의 사유를 들어 거부할 수 없다” (대법원 2006.11.9. 선고 2006두1227 판결)고 하고 있다.

따라서 서울시에서 디자인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건축위원회 심의 지침으로 운영하는 것은 법률에 의해서만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제한할 수 있다는 법률유보주의에 위반한 행정행위다. 법률은 국민적인 합의에 의해 국회에서만 제정할 수 있다. 만약 서울시가 디자인이 우수한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면 단순히 지침으로 운영할 것이 아니라 관계 법률에 디자인의 질을 건축위원회에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지침은 단지 행정관청 내부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국민에게는 그 효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옷을 살 때 디자인이 좋은 명품 옷만을 살수는 없다. 또한 디자인이 우수한 명품 옷만을 입고 다니라고 지침을 만들고 단속을 할 수도 없다. 각자의 경제적 여건과 처한 입장 및 상황에 따라서 가판대에서 옷을 사서 입을 수도 있는 것이며, 재래시장이나 백화점, 아니면 명품점에서도 구입해 입을 수 있는 것이다.

건물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경제력과 기능, 그리고 활용기간 등을 고려해야 하며, 더욱이 건축주와 설계자의 디자인 감각에 따라 다른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일률적으로 디자인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건축허가를 제한할 사항은 아닌 것이다.

60년대의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재고, 장발을 단속하는 초보적 수준의 행정을 서울시가 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