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영역에서 관성의 법칙이란 정지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한다는 원리로 이해하고 있다.

 

이 원리에 비춰볼 때 법영역 특히 公法이 아닌 私法영역에서도 관성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권리관계가 충돌할 경우 현재까지 지속돼 온 권리관계나 상황을 변경하려면 원칙적으로 계약 또는 동의 등 쌍방의 의사가 합치돼야 한다. 의사의 합치가 없는 한쪽 당사자의 일방행위로 인한 변경은 불허하고 변경을 원할 경우 변경을 희망하는 당사자가 소송 등 법에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 구조가 물리영역에서와 흡사하여 필자는 이를 「법영역에서의 관성의 법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관성의 법칙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는 죄가 권리행사방해죄다. 형법 제323조는 ‘타인의 점유 또는 권리의 목적이 된 자기의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취거, 은닉, 또는 손괴하여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를 권리행사방해죄로 규정하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소유권이 나에게 있고 임대기간이 만료됐다고 해도 임차인의 집이나 방실에 승낙 없이 들어가면 주거침입이나 건조물침입죄가 된다고 소개했다.

 

마찬가지로 내 물건이라 해도 함부로 부수지 못한다. 갑은 을에게 건물을 보증금 없이 월세로만 임대했다. 계약기간이 만료했음에도 을은 월세도 내지 않고 건물을 비워주지도 않았다.

 

갑은 을에게 찾아가 퇴거를 촉구하는 과정에서 홧김에 내 물건이니 내 맘대로 하겠다며 마루바닥을 가지고 간 망치로 수회 내리쳐 구멍을 내고 현관문 한짝을 뜯어 가지고 나왔다.

 

이때 재물손괴죄는 타인의 재물을 손괴하는 경우이므로 마루를 부순 부분을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없다. ‘절도죄 역시 타인 소유의 물건에 대한 점유를 이전하는 경우인데 현관문의 소유권 자체는 갑에게 있으므로 절도죄로 처벌할 수도 없다.

 

이러한 사례에 들어맞는 것이 바로 권리행사방해죄다. 갑이 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권리행사방해죄의 객체는 ‘자기의 물건’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대법원은 자기의 물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당연하다.

 

갑은 실내건축 및 건물임대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갑은 실제 자기 소유인 10층 빌딩의 1층 307호를 병에게 임대했다. 갑은 빌딩을 처에게 명의 신탁해 등기부에는 처 명의로 등재돼 있다.

 

임대차계약 내용에 따라 갑이 실내장식공사를 해주고 있던 중 병의 동생과 실내장식 공사대금 문제로 심하게 다퉜다. 갑은 관리인 을에게 307호의 문에 자물쇠를 채우라고 지시하고 을이 오더라도 307호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검찰에서는 갑을 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했고 1심, 2심에서는 권리행사 방해죄가 인정됐다.

 

대법원은 달랐다. 빌딩은 갑이 자기의 처에게 명의신탁했기 때문에 그 명의신탁의 유·무효에 관계없이 병에 대한 관계에서는 갑이 소유자가 아니라 갑의 처가 소유자라고 판시했다. 그렇다면 빌딩은 타인소유이고 권리행사방해죄에서 말하는 ‘자기의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권리행사방해죄는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법망이 허술한 듯 보여도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대법원의 취지는 굳이 법리에 저촉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업무방해죄의 성립을 인정했다.(대법원 2005.9.9.선고 2005도 626)

 

다만,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의 점유개시가 적법해야 한다. 점유개시 자체가 불법인 경우까지 법에서 보호하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

 

갑은 어느 날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가마솥을 찾았는데 가마솥이 보이지 않았다. 집안 곳곳을 확인해도 찾지 못하던 중 우연히 을의 집에 들렀는데 을은 없고 을의 집 마당에 갑의 가마솥이 있었다. 을이 가마솥을 탐내 훔쳐간 것이다. 갑은 가마솥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

 

이때 을의 점유개시는 적법한 권원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권리행사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될 수 없다고 대법원이 판시했다.

 

관성의 법칙에도 예의가 인정된 셈이다. 관성의 법칙도 상식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보다.

 

좀더 깊이 들어가면 권리행사방해죄의 성립여부가 그다지 쉽지 만은 않다. 갑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임야의 입목을 벌채해 달라고 을에게 용역을 줬다.

 

그 대신 공사를 모두 끝내면 벌채한 원목을 을에게 주기로 약정했다. 을은 벌목작업을 약속대로 모두 마무리 했으므로 원목들은 이제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이 이를 모두 병에게 처분해 버렸다.

 

을은 절도죄로 재판에 회부됐으나 대법원에서는 원목자체가 아직은 갑의 소유이기 때문에 절도죄에 해당하지 않고 을의 원목에 대한 인도청구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한다고 결론 냈다. 권리행사방해죄를 다소 넓게 인정한 듯하다.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어 보인다.(대법원1991.4.26.선고 90도1958)

 

반면 타인의 권리의 목적이 된 자기소유 토지를 제3자에게 매도해 그 소유권 이전등기를 한 행위는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1994.9.27.선고 94도1439) 일견 두 개의 판례가 서로 모순돼 보인다.

 

구체적인 사례를 분석해 볼 호기심이 발동된다. 무언가 상식이나 경험칙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