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단지 안의 종전 기반정비시설과 무상양도>
아파트 단지 안에 존재하는 단지 내 도로나 공원이 해당 아파트 소유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대지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과거 아파트 단지의 경우 도로나 공원은 도시계획시설로서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많았다. 이 경우 재건축사업시행 인가권자인 행정청은 사업시행인가 시 조건을 붙여 단지 내 도시계획도로 등을 재건축조합이 시가(이 경우 통상 대지로 평가한다)로 착공 또는 준공인가 전 매수하도록 하면서 사업시행인가에 따라 새로이 설치되는 도시계획도로 등은 관계 법령에 따라 행정청에 무상귀속 또는 기부채납 시키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2002. 12. 30 제정․공포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라 한다)」 제65조제2항은 종전의 도시재개발법이나 다른 법률들과 달리 재건축조합과 같은 행정청이 아닌 사업시행자에게도 ‘용도가 폐지되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소유의 정비기반시설은 그가 새로이 설치한 정비기반시설의 설치비용에 상당하는 범위 안에서 사업시행자에게 무상으로 양도된다.’라는 강행규정을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다른 법률에서는 ‘무상으로 이를 양도할 수 있다.’라는 규정이 도시정비법에서는 ‘무상으로 양도된다.’라고 달리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건축사업시행 인가권자인 행정청은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여 용도가 폐지되는 정비기반시설을 시가로 매수하도록 사업시행인가 조건을 부과하여 왔다. 이에 서울 화곡2지구, 반포주공3단지 재건축조합 등이 사업시행인가 조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최근 들어 대법원 상고심에서 재건축조합 측이 잇달아 승소하였다. 이에 따라 재건축사업 단지별 여건에 따라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까지 재건축 사업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른 파장이 전국 재건축사업 현장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정소송에서 문제가 되었던 주요 법적 쟁점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 쟁점은 도시정비법 제65조제2항의 규정이 강행규정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하여 법원은 도시정비법 제65조제2항의 규정이 사업시행자가 신설한 정비기반시설의 무상귀속으로 인하여 사업시행자의 침해된 사유재산권을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보전하여 주거나 정비기반시설의 설치에 소요되는 비용부담의 형평을 도모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으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65조제2항에서의 규정형식과 달리 규정되어 있어 용도 폐지될 정비기반시설의 무상양도를 강제하는 강행규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두 번째 쟁점은 용도 폐지되는 정비기반시설로서 무상 양도되는 범위는 같은 용도로 대체되어 새로 설치하는 정비기반시설의 설치비용 내로 한정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반포주공3단지 재건축조합과 관련된 소송에서 가장 쟁점이 되었던 부분으로 행정청은 조합이 설치하고자 하는 도로는 「환경․교통․재해 등에 관한 영향평가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설치하여야 하는 도로로서 당연히 조합이 그 설치비용을 부담하여야 하고, 용도 폐지될 도로를 대체하는 기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용도 폐지될 도로는 무상양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그가 새로이 설치한 정비기반시설’이란 제65조제2항 전단규정의 ‘사업시행자가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새로이 설치한 정비기반시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사업시행자가 새로이 설치한 정비기반시설’이 용도 폐지될 정비기반시설과 기능대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해석하거나, 사업시행자가 새로이 설치한 정비기반시설 등 관련법에 따라 당연히 그 설치의무가 인정되는 정비기반시설을 제외되는 것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행정청이 주장하는 논리들은 과거에 무상양도에 관련된 법률 규정들이 모두 임의규정으로 되어 있던 때의 법 해석론으로서 도시정비법이 무상양도에 관련된 내용을 강행규정의 형식으로 규정한 이후에는 적용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인 셈이다. 그렇다면 향후 행정청이 행정행위 부담의 형식으로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인하여 용도가 폐지되는 정비기반시설 부지를 사업시행자에게 매수하도록 하는 것은 현행 법률상 허용될 여지가 거의 없다. 즉 도시정비법 제65조제2항 무상양도에 관한 규정형식이 ‘무상으로 양도된다.’라는 강행규정에서 ‘무상으로 양도할 수 있다.’라는 임의규정으로 다시 개정되기 전까지는 행정청으로서는 용도 폐지되는 정비기반시설은 사업시행자가 새로이 설치한 정비기반시설의 설치비용에 상당하는 범위 안에서는 반드시 무상 양도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행정청으로서는 도시정비법의 법률 규정에 반하여 더 이상 무상 양도 자체를 다투기보다 무상 양도에 관한 세심한 절차 등의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예를 들어 도시정비법 제65조제4항에서 ‘정비기반시설은 그 정비사업이 준공 인가되어 관리청에 준공인가통지를 한 때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거나 사업시행자에게 귀속 또는 양도된 것으로 본다.’라고 소유권 변동시점은 규정하고 있으나, 새로이 설치한 정비기반시설 설치비용의 구체적인 산정방법이나 용도 폐지된 정비기반시설의 가격시점 및 가격산정절차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에 관한 규정들을 도시정비법 안에 새로이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점은 향후 무상 양도를 임의규정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에 대한 위헌성 시비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비사업과 유사하게 새로운 공공시설의 설치와 종전 공공시설의 용도 폐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각종 개발사업의 경우 무상귀속 또는 무상양도의 입법취지를 도시정비법상의 입법취지와 달리 해석하여 행정청이 임의대로 무상 양도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볼 정당하고도 합리적인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무상 양도를 규정하고 있는 다른 법률들도 임의규정에서 강행규정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