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부동산 이중매매와 배임죄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 및 중도금까지 받은 상태에서 매도인이 그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해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면 매도인은 배임죄로 처벌된다. 부동산 이중매매와 배임죄의 요지다.
토지가 준비돼 있으나 공사대금이 부족한 경우 토지주는 자금여력이 있는 시공자를 선정해 공사대금을 건물 준공 후 상가 또는 아파트로 대물변제하기로 한다.

‘대물변제’란 말 그대로 돈 대신 물건으로 빚을 갚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공사대금 5억원 대신 분양가 2억5000만원의 상가 2채를 넘겨주겠다고 약정하면 그 상가들에 대해서 매매계약이 체결되고 계약금, 중도금, 잔금이 모두 지급된 것으로 본다. 때문에 건축주는 상가에 대해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치고 바로 대물변제의 상대방인 공사업자에게 그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야 한다. 건축주가 해당 상가를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이전등기하거나 근저당권을 설정한다면 배임죄가 성립함에 의문이 없다.

배임죄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해서 자신이 재산상 이익을 얻고 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것’이다.
앞의 사례에서 상가 건축주는 공사업자에게 하자 없는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줄 임무가 있다.
재개발 재건축 분야에서도 공사대금을 건물 등으로 대물변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업시행자나 건축주, 토지소유자 등이 법을 어기고 배임행위를 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 쉬워 주의를 요한다.

그러나 외관상 임무를 위배하는 행위가 있다고 바로 배임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행위자에게 죄를 범하려는 고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갑(甲)은 어느 지방 대도시 아파트 재건축 조합의 조합장이고, 을(乙)은 이조합의 총무로 근무해 왔다. 조합에서는 절차를 밟아 종합건설회사인 병(丙)에게 시공을 맡겼다.
병은 공사대금을 나중에 아파트로 대물변제 받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 진행 중인 2007년 2월경 공사자금이 부족하자 사채업자로부터 자금을 빌리기로 했다.
사채업자는 시공자인 병에게 5억원을 빌려주면서 2007년 5월까지 5억원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병이 조합으로부터 대물변제 받기로 한 아파트 중 7채에 대해 사채업자에게 소유권을 넘겨주기로 했다. 사채업자의 요구에 따라 위 2007년 2월경 돈을 빌리기로 약정할 때 조합사무실에서 갑과 을이 입회해 아파트 7채에 대해 분양계약서를 작성해줬다. 분양계약서의 계약자를 사채업자로 하고 시행자란에 조합장인 갑이 서명 후 그 옆에 조합의 인감도장을 찍었다.

조합은 2007년 8월 30일 아파트에 대한 준공검사를 마쳤고 같은 해 10월 12일 조합원 지분에 대해서 조합원 개인들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다.
시공자 병에게 대물변제하기로 한 상가 1세대 및 아파트 22세대에 대해서는 일단 조합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다. 여기에는 물론 사채업자에게 시공자가 대물변제하기로 한 아파트 7세대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보존등기를 하는 것과 같은 날에 전체 아파트(아파트 7세대포함)에 대해 농협을 채권자로 하고, 채권최고액을 41억8800만원으로 하는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이어서 열흘 후인 10월 22일 아파트 7세대에 대해 농협을 채권자로 하고 채권 최고액을  9720만원으로 하는 근저당권을 추가로 설정했다. 
검찰에서는 시공자가 채권업자로부터 5억원을 빌릴 때 갑과 을이 분양계약서를 작성해서 아파트 7세대에 대해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줄 임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고 위와 같이 근저당권을 설정등기 했으므로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결론짓고 갑과 을을 재판에 회부했다.

1심에서는 갑과 을에게 유죄가 인정돼 모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씩 선고 받았다.
갑과 을은 항소했고 항소심에서는 근저당권 설정경위 및 이유를 보다 깊이 심리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조합에서는 2005년 10월 25일 시공자 병과 사이에 재건축공사를 총 28억원에 도급하고 조합원 분양분을 제외한 아파트 22세대 및 상가 1세대를 분양해 그 대금을 공사비에 충당하기로 약정했다.
그런데 조합은 시공자와 공사도급 계약을 체결하기 7개월 전인 2005년 3월 11일 농협으로부터 7억6000만원을 대출받으며 아파트 부지에 채권최고액을 9억8800만원으로 정해 근저당권 설정등기를 마쳤다.

또한 조합과 시공자, 농협 3자 사이에 2005년 3월 18일 아파트 분양자 및 분양 예정자에 대한 분양관련 중도금 및 자금대출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조합과 시공자는 아파트가 준공돼 아파트를 분양 받는 자 앞으로 소유권이전 할 때 소유권이전등기와 동시에 농협에게 1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조합과 시공자는 농협의 채권확보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사유가 발행할 경우 이를 즉시 농협에 통지해 원활한 채권확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후 분양자들은 2007년 10월 20일까지 농협으로부터 합계 약 22억원을 대출받았다.

항소심에서는 위와 같은 사정을 감안해서 ‘아파트 부지 외에 건물에 추가로 근저당권을 설정한 것은 2005년 3월 11일자 대출계약 및 2005년 3월 18일자 협약서에 기한 근저당권 설정등기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서 조합과 사채업자 사이의 2007년 2월 6일자 대물변제계약 보다 앞서는 채무를 이행한 것이므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갑과 을은 무죄가 선고 됐다.
다만, 조합이 사채업자에게 위와 같은 근저당권 설정등기 의무를 의도적으로 속였다면 갑과 을에게 사기죄를 적용할 여지는 남아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