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류나무가 높이자란 제방에는 풀뜯는 소들이 한가로이 서성대고 무릎을 겨우 덮는 개울에는 송사리와 함께 물놀이를 즐기는 조무래기들의 함성이 가득하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한 폭의 수채화로 남아 있는 어린 날의 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감수성의 원천으로서 마르지 않는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내가 살던 집 뒷산,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들판을 가로질러 바라보이던 산막들은 별다를 것도 없는 그저 그런 풍경이지만 내 영혼과 정서를 키워내던 훌륭한 자양분으로서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줬다.

 

인간은 지역이라는 공간을 떠나서는 존재 할 수 없는 생명체로서 지역의 특성과 여건에 따라서 성격과 기질이 달라진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대륙적 기질은 느긋하고 여유있으며 자잘한 일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대범함이 있고,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의 국민성은 너그럽지 못하고 조급하며 속좁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인문학적 관계를 연결짓는 인문지리학의 주요한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끈끈한 관계를 나타내는 사례는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을 수 있겠으나 인간과 자연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이다.

 

특히 인간은 자연환경과 함께 삶이 이루어지는 지역이라는 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지역공간의 구성과 특성이야말로 인간생활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 지역공간은 자연환경이 주를 이루며 또 다른 구성요소인 인공구조물과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삶의 모습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새로운 특성을 창출해낸다.

 

지역색 혹은 지방색이 바로 이러한 실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지역의 고유성은 지역주민의 공동체의식을 이루고 구심점으로서 작동하여 공동체 구성원들의 동질성과 유대감을 형성한다. 지역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역공동체는 지역문제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자발적인 참여와 영향력 행사를 통하여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의 공동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구성원 상호간의 친밀감과 결속력은 지역발전에 대한 간절한 염원으로 승화되어 지역성장의 추진 동력으로서 작동하고 이러한 지역사랑은 국가와 사회의 통합과 결속을 위한 순기능으로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는 발전의 성장단위로서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의 특성과 고유성을 이루는 공간구성을 위한 인위적인 노력과 시도 또한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들어 자연환경과 함께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인공 구조물과 조형물의 역할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됐다.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과 인공조형물 이름만으로도 한 지역과 도시를 대변한다.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룩셈부르크의 오줌싸개소년, 동경의 도고타워,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 싱가포르의 사자상 등은 인공물로서 도시의 상징이 되어버린 경우다.

 

이러한 인공물들은 지역민의 사랑뿐이 아니라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관광객을 유치하고 도시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 하고 있다.

 

한국의 도시에서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도시를 상징하는 인공시설물을 든다면 얼마나 꼽힐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비인격적으로 획일화된 도시가로시설물과 비문화적이며 몰장소적인 아파트 중심의 도시경관은 한국의 지역사회를 특색없이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주범들이다.

 

한국 지역사회의 차별화된 개성있는 연출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왔는지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미래의 어느 날 문득 떠올릴 수 있는 추억속의 도시풍경 창조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아름다움의 진정성은 상황과 특성을 고려한 고유성의 창출에 달려있다. 지역만의 독특함 자체가 매력적인 도시경관의 요소이고 사람을 꼬이게하는 유인요소다.

 

도시의 자연환경은 그대로 보전하면서 도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면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삶 또한 풍족해질 것이다.

 

수천수만년 걸려 만들어진 자연의 모습을 100년도 안되는 인간의 눈으로 재단한다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무조건 깎아내고 평평하게 다듬는 것이 지역공간 가꾸기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자연은 있어온 채로 있어야 한다는 확신이 공유될 때 우리의 지역 공간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나는 염원한다. 추억속의 공간이 언제까지나 내 발길을 기다리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