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이후 정비사업에 있어서의 세입자 등의 권리가 강화돼 가는 쪽으로 도시정비법이 개정되고, 해석론 역시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업시행자인 정비사업조합 역시 새로운 대응책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데, 이와 관련해 새로이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조문이 도시정비법 제44조이다.

 

도시정비법 제44조는 크게 2가지 내용으로 구성되는바, 정비사업의 시행으로 인해 지상권·전세권 또는 임차권의 설정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때에 권리자가 행사할 수 있는 계약 해지권(같은 조 제1항부터 제4항까지)과 관리처분계획의 인가를 받은 경우 지상권·전세권설정계약 또는 임대차계약의 기간에 대해 민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 일부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조항(같은 조 제5항)이 그 것이다.

 

한편 이 조문의 해석론과 관련해 일부 책자는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등)이 시행되면서 임차인이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을 근거로 이주를 거부하면서 과도한 금액을 요구해 사업이 지연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자, 도시정비법은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지상권 등 계약의 해지 규정을 도입했는바, 정비구역 내 지상권 등 권리자에게 계약해지권을 부여해 정비사업 시행으로 인한 권리행사상의 불이익을 피할 수 있게 했고, 세입자에게도 주택철거 전 이주를 사실상 의무화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송현진·유동규, 재개발·재건축 이론과 실무, 법률출판사, 2009, 654쪽 참조).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해석론은 도시정비법 제44조의 연혁 등을 세밀히 살펴보지 않은 독단적인 견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도시정비법 제44조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규정은 도시정비법이 새로 도입한 제도가 아니라 종전 도시재개발법 당시부터 이미 존재하던 조문이었기 때문이다(더 정확하게는 1971.1.19. 도시계획법 전부 개정으로 재개발사업에 관한 근거 조문이 처음 도입됐을 때부터이다).

 

따라서 도시정비법이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지상권 등 계약의 해지 규정을 처음 도입했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으로 재개발사업이나 도시환경정비사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재건축사업에까지 확대·적용되게 된 것에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도시정비법 제44조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규정은 우리나라에 재개발사업이 처음 도입될 당시부터 존속돼 왔던 것이었지만 실제로 적용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실무에서 거의 주목하지 않던 조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조항을 활용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일부 있는데 사업시행자인 정비사업조합이 이 조항들을 근거로 임대차계약 등을 해지할 수 있다고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정비법 제44조제1항은 계약의 해지권이 ‘지상권·전세권 또는 임차권의 권리자’에게만 있음을 명시하고 있고, 이에 터 잡아 동조 제2항에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자가 갖는 전세금·보증금 그 밖의 계약상의 금전의 반환청구권은 사업시행자에게 이를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사업시행자에게 계약 해지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 법문상 명확하다 할 것이다.

 

한편 도시정비법은 종전 도시재개발법에 없던 새로운 제도로서 제44조제5항을 신설했는 바, 이는 사업시행자에게 다소 유리한 내용으로 지상권자 등의 계약해지권에 대응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업시행자에게 일방적인 계약해지권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조합 설립의 인가일(시장·군수 또는 주택공사 등이 단독으로 시행하는 경우에는 시행자 지정고시일) 이후에 체결되는 지상권·전세권설정계약 또는 임대차계약의 계약기간’에 대해 민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 일부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도록 돼 있다가 지난해 2월 6일 도시정비법 개정으로 ‘관리처분계획의 인가를 받은 경우 지상권·전세권설정계약 또는 임대차계약의 계약기간’에 대해는 민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 일부 규정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러한 개정내용에도 불구하고 도시정비법 제44조제5항은 관리처분계획의 인가가 있은 경우에 지상권·전세권설정계약 또는 임대차계약의 계약기간이 종료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 당사자 간에 체결된 계약기간에 관해 민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의 강행규정의 적용을 배제해 계약기간 약정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