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은 지하철의 도시이다. 지하철 역사를 중심으로 일상이 움직인다. 예술과 문화가 지하역사에 있고 시민들의 하루는 지하철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록본기 힐즈의 번화함과 미드타운의 활기도 지하철이 있기에 가능해질 수 있었다.

 

지하철로 이어지는 동경의 지하세계는 인간적인 내밀함이 드러나기보다는 일상의 피로와 타자와의 무관심이 한데 뒤엉키어 가장 일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와 격식속에서 인간미를 앗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경에서는 버스승강장을 볼 수는 있어도 지하철역만큼의 분주함을 찾기는 어려웠다. 지하의 세계가 분초를 다투는 치열함이라면 지상의 세계는 느슨함으로 이루어지는 다른 세상이었다.

 

내가 그곳으로 다가서려하면 거절할 것만 같은 낯설음이 지상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은 일상을 떠나 일탈을 꿈꾸는 이들의 내면의식의 발로이리라고 얼른 단정을 해버린다. 나 또한 지하세계에 속하고 있을 터이고 지상의 여유와 느긋함에 눈 돌리다가는 영영 주류로부터 떨어져나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 이라고 스스로에게 결론을 내게 한다.

 

동경이란 도시는 인공의 색깔과 가공된 냄새로 가득 차 있다. 만들어진 도시는 찬란하고 호화스럽고 엄청난 규모를 보여주지만 인간의 체취와 정서를 느끼고 싶어하는 여행자에게는 곁을 내주지 않았다. 인간 스케일로 만들어졌다는 주상 건물의 상업. 문화공간의 배치도 철저한 배금주의와 완벽한 상술만을 떠올리게 한다.

 

공간의 입체적 이용이라고 자랑하는 공중정원과 공중가로는 완벽하면 할수록 자연미가 사라지고 인간미가 보이지 않는 삭막함으로 나를 서글프게 하였다. 가장 자연스럽게 인간을 위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도시설계자나 단지 개발기획자의 의도가 정교하면 할수록, 성과가 확실하게 들어난 곳일 수록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불안감이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스멀스멀 피워져 올라왔다.

우리가 추구하는 거대도시의 모습이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일본체류 일주일간 내내 나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물론 짧은 방문기간 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터이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도 미미할 것임은 스스로 충분히 인정한다 해도 내안의 본능과 감각은 이건 아니라고 연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덫에 걸린 도시의 왜곡된 실상을 바로잡고 인간성의 상실을 치유하고 복원하려는 시도는 나그네 한명이 감상이 아니라 우리시대의 소명이라고 생각된다. 도시개발의 진정한 목표는 도시에 거주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존재감을 인정하고 그들의 삶을 통해 조화로운 상생관계를 이룩하고 나아가 공동선의 실현에 있음을 알아야한다. 인간과 인간의 가치가 소중히 여겨지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모든 기준이 조정될 수 있는 도시개발전략의 수립이 어느 때 보다도 소중한 시기일 것이다.

느닷없이, 군중 속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타인들 속에서 우리의 삶이 지속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이고 공포이다. 사람간의 사람다운 만남이 있는 도시의 모습을 찾고 싶다. 자연그대로의 모습이 남아 있는 도시의 모습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