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지중화설치비용

과거 전기선로는 가공선(架空線)의 방법으로 설치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도시와 산업의 발전에 따라 가공선 방식의 송배선시설이 보행자의 안전과 원활한 교통에 방해가 되고 도시미관을 해치며 재해발생 시 큰 위험을 발생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건강과 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전기선로의 지중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도시지역에서는 전선 외에 각종의 통신선(전화선, 컴퓨터 통신선, 케이블 TV선 등)이 뒤얽히면서 배전선로의 지중화 필요성이 더욱 강력해졌다. 선진국일수록, 전력소모량이 많을수록, 국민안전을 우선시하는 국가일수록 지중화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이고, 우리나라도 도심 과밀지역을 중심으로 지중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송배전선로 지중화의 경우 고장발생 시 고장발생장소를 발견하기 어렵고 복구시간이 많이 걸리며, 선로운영을 위한 지상기기의 설치 공간 확보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고 무엇보다도 가공선로 공사에 비해 지중화 선로 공사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어려움이 있어서 모든 전기 선로의 지중화는 아직까지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공선 설치와 비교할 때 지중선 설치에는 통상 7 내지 15배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이러한 막대한 비용 때문에 도심 과밀지역을 중심으로 지중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고, 택지개발사업 등 대규모 개발사업에서 전기시설의 지중화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한 개발사업의 법률과 전기사업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택법(간선시설 비용부담과 관련된 택지개발촉진법의 내용은 주택법을 준용한다.)은 제23조는 전기사업자가 전기시설의 설치비용을 부담하되 전기 지중화설비의 경우에는 개발사업자와 전기사업자가 그 설치비용의 50%씩을 각 부담하도록 돼 있으며, 도시개발법 제54조는 가공선로와 지중화선로를 구분하지 아니하고 그 비용을 전기시설을 공급하는 자가 부담하도록 돼 있다. 이에 반해 전기사업법 제15조 및 한국전력공사 전기공급약관 제84조, 제88조는 주택단지·산업단지 등의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전기간선시설 및 단지 내 배전시설을 미리 설치하는 경우 공사비는 사업주체가 부담하되 법령에 특별히 명시된 경우는 공사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한국전력공사가 부담’할 수 있으며, 다만 ‘주택법에 의한 주택단지의 전기간선시설의 지중화 설치의 경우에는 사업지구 경계선까지의 공사비는 한국전력공사가, 개별 주택단지 경계선까지의 공사비중 가공전선로 공사비와 지중전선로 공사비와의 차액은 사업주체가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주택단지의 건설 내지 개발사업에 관한 주택법 및 도시개발법에 의하면, 사업주체 내지 사업시행자는 전기시설의 설치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것이 되는데, 오히려 전기사업법 및 전기공급약관에서는 그 시설을 이용한 사업자, 즉 사업주체 내지 사업시행자가 결국 그 설치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으로 돼 있다.

법률의 규정이 서로 상이하고 어떠한 법률을 적용할 것인가에 따라 그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가 달라지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분쟁이 발생하고, 이러한 분쟁은 대규모 택지를 개발하는 사업에서는 첨예하게 대립되게 된다. 실무적으로는 전기사업자인 한국전력공사와 개발사업 시행자 간에 전기지중화시설에 관한 공사비부담계약서를 체결해 그 비용의 전부를 개발사업 시행자가 부담하게 하고 있는데, 위와 같은 각 법률 간의 상충을 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개발사업의 진행을 위해서 계약을 체결하고 그 비용을 납부하고 난 후에 부당이득반환 등의 소송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발사업 시행자는 한국전력공사와 공사비부담계약서를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계약서가 ‘주택법이나 도시개발법의 규정이 강행법규에 위반돼 무효이거나 한국전력공사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체결한 것이므로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이며, 사업일정에 쫓기는 사업시행자의 궁박한 사정을 이용해 법률의 규정과 다른 내용으로 공사비부담약정을 체결하게 된 것이므로 민법 제104조에 따라 무효이고, 또한 사업시행자가 착오로 공사비 부담의무가 없음을 알지 못한 채 이를 체결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는데, 결국 ‘주택법과 도시개발법의 규정이 강행법규인가’와 ‘이 법률의 규정에 위반한 합의의 효력이 있는가’로 귀착되게 된다.

이와 관련된 법원의 선례를 살펴보면, 전기간선시설의 설치비용을 설치방법에 상관없이 그 설치 의무자에 부담시키는 舊 주택건설촉진법 제36조 제3항이 설치의무자의 기업경영의 자유나 재산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해 한국전력공사가 위헌소원을 제기한 사안에서 ‘개발사업의 사업주체가 설치비용을 부담하는 경우 그 비용은 결국 택지의 공급가에 반영돼 불이익을 받는 자는 주택단지 내의 주민들로 제한되는 반면, 한국전력공사가 설치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는 전기요금에 반영돼 모든 국민에게 그 피해가 전가되며, 지중화 설치가 보편화됨에 따라 한국전력공사의 비용부담의 증가가 계속 확대돼 재산상 손해가 막대하게 되고, 택지개발사업을 시행함에 있어서 전기 간선시설의 지중설치 여부, 비용부담자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한국전력공사의 의사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계약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라는 의견이 다수(5명)였으나 정족수 미달로 합헌의 결정이 났다(헌재 2005. 2. 24. 선고 2001 헌바 71).

또한 대전 송촌 택지개발사업지구에서의 전기 지중화 설치비용과 관련된 분쟁에서법원은 ‘아직은 전기시설의 통상적인 설치방법이 가공설치이고, 지중화 설치비용까지 전적으로 전기공급자에게 부담시킬 경우 지중화 비용은 결국 동일한 전기공급가격이라는 장치를 통해 농촌지역의 수용가에게 전가돼 불공정성을 야기하므로, 구 주택건설촉진법 제36조는 가공설치 방법을 전제로 그 설치비용을 전기공급자의 부담으로 하고 있는 것이고 지중화 비용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지중화 비용의 부담에 관해는 법에서 정한 바가 없으므로 택지개발사업의 시행자와 한국전력공사 간에 체결된 공사비부담계약서는 당사자 사이의 협의에 의해 부담자를 정한 것은 적법하다.’고 판시(대전고법 2006. 9. 6. 선고 2005나5469 판결)해 한국전력공사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한편 위와 같이 헌법재판소와 대전고등법원의 판결이 있은 후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전기시설 설치비용 부담에 관한 주택법(제32조 제4항)의 규정이 2007.1.11.자로 개정됐다. 이는 국회에서의 개정법률의 심사보고서 등에 나타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전기 지중화설치비용에 관해 현실적으로 분쟁이 발생하고 있고 헌법재판소 또는 법원의 판단을 고려해 개정된 것으로 추측된다.

마지막으로 수용방식과 환지방식을 혼합해 진행하고 있는 전주서부신시가지 도시개발사업에서 전기 지중화 설치비용부담에 관한 분쟁을 소개하면, 법원은 ‘도시개발법 제54조의 규정은 거래 당사자가 임의로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없는 강행규정으로, 당사자 사이에 시행자에게 전기시설의 설치비용을 부담하도록 한 부분은 강행규정에 반해 무효.’라고 판시(전주지방법원 2007. 6. 28. 선고 2006가합4860 )해 도시개발사업자의 손을 들어 줬다.

헌법재판소나 위 하급심은 모두 주택법 제23조 및 도시개발법 제54조는 전기공급시설 중 간선시설의 경우에는 전기공급자인 한국전력공사에게 그 설치비용 부담 의무를 지우고 있는 규정이고 따라서 그 설치비용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기사업법 및 전기공급약관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구 주택건설촉진법(현행 주택법 제23조)과 도시개발법 제54조에 따라 전기공급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긍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대법원의 판결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사업 시행자이든 전기공급자이든 간에 서로 합리적인 조정을 위한 협의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나, 개발사업 시행자 입장에서는 전기선로 지중화는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토지의 이용가치를 증가시키므로 토지의 가격을 높이게 되고 또한 지중화 사업비용 전부가 전기공급자의 부담으로 될 경우 개발사업 시행자는 아무런 비용부담 없이 전기선로의 지중화를 결정하게 되는 것을 인정해 하고, 반대로 전기사업자는 전기간선시설은 가공이든, 지중이든 간에 전기사업자의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수익시설이며 전기사업자의 재산으로 귀속됨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비용은 상하수도부담금, 광역교통시설부담금과 달리 기반시설부담금에서 공제되지 않는 비용으로, 만약 개발사업 시행자 이와 같은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라도 이 비용만큼 기반시설부담금 공제대상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