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사법연수생 시절 김용준 법조대선배(후에 헌법재판소장 역임)로부터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까지 필자의 머리에 남아 있는 내용은 당시 그분이 30년 가까이 법조에 종사하다보니 어떠한‘감(感)’이 형성됐다는 것이고 그 ‘감’이 대부분은 들어맞는다고 하셨다.

외람되지만 필자도 20여년 법을 접하다보니 사실인정이나 법의 해석에 대해 나름대로 약간의‘감’이 생긴듯하다. 필자는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님의‘감’과 필자의‘감’을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감’들이 모두‘상식’에 기초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누군가가 법은 상식인가라고 필자에게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법은 상식이고, 상식이어야 한다”라고 답변하겠다. 필자의 이 칼럼 첫 번째 소재로서‘법은 과연 상식인가’라는 제목 아래 2만원 정도에 불과한 점심식사 접대도 뇌물이라는 신문기사를 인용했다.

신문기사는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면서 2만원정도의 점심대접도 뇌물이라고 결론 짓고 있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그 결론 자체는 상식이 아니고 대법원 판례에 무언가 다른 상식적 요소가 있을것 같았다.
1심과 2심 판결 내용을 통해서 구체적인 사안을 보니 해당 피고인은 관련 공무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몇 번 식사 대접 후 수백만원의 돈을 주려다가 거절당했다.

피고인의 점심 접대를 포함해 뇌물공여죄로 처벌할 필요성이 생기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인의‘상식’에 부합되는 특별한 사정이 엿보이는 사례다. 지난 5월 27일자 칼럼의 제목은‘미등록정비사업 전문관리자의 처벌(배임수재)’이다. 당시 필자가 인용했던 사례를 다시 소개해 본다.

갑(甲)은 정비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A회사의 경영자고 A회사는 정비사업 전문관리자로 등록이 안 돼 있다. 을(乙)은 B건설회사의 대표이사다.
갑은 2004년초 서울 강서구에 소재한 재건축조합으로부터 해당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과 조합업무지원을 위탁받았다.

 

그 후 갑은 위탁받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을로부터 시공사로 선정되게 해 준데 대한 사례로 현금 2억5000만원(부가세 포함 2억7500만원)과 정비사업의 철거공사 부분을 하도급 받고 2004년 8월부터 10월까지 철거공사비 명목으로 2억6000만원을 교부받았다.

검찰에서는 갑에 대해 미등록정비사업죄는 물론 시공사선정 사례비 2억7500만원과 철거공사비 2억6000만원 중 실제 철거공사비 및 인건비를 제외한 8000만원 부분을 불법이익으로 보고 배임수재죄로 기소했다. 1심 법원에서는 2억7500만원 부분과 관련해 첫째 시공사 선정에 대한 사례, 둘째 미이주자를 이주해 주는 것에 대한 대가, 셋째 제3자가 재건축구역에 소유하고 있는 단독주택 및 토지 100평을 매수해 주는 것에 대한 컨설팅 명목이라는 갑의 변명을 받아들였다.

철거공사비와 관련해서도 해당 지역에 지하구조물이 많은 점을 감안해 일반적으로 평당 12∼13만원이지만 평당 17만원으로 높게 책정했다는 변명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배임수재는 무죄, 미등록 사업부분만 유죄가 인정돼 갑에 대해 징역 1년이 선고됐다.

여기서 필자에게 그‘감’이 발동했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 배임수재죄가 무죄선고된 것을‘상식’으로 받아들일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당시 항소심 판결내용을 확인해 보겠다고했다. 마침 갑은 항소했고 항소심 결과 배임수재죄는 유죄로 변경됐으며 상고심인 대법원(2008. 7. 10. 선고, 2007도7760 배임수재등)에서도 유죄가 확정됐다.

특정인으로부터 계약의 상대방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 대가로 돈이나 특혜를 받는 것은 배임수재죄에 있어서‘부정한 청탁’에 해당되고, 이미 수사기관에서 시공사 선정에 대한 사례비임을 자유롭게 인정한 이상 법정에서의 부인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판결변경의 요지다.

이제는 필자가 소개한 사례의 판결결과가‘상식’에 부합된다고 보여 안심이 된다. 지난 번 시간에 쫓겨 항소심 판결 내용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1심 판결 내용만 우선 소개하면서‘감’에 어긋나 머리에 맴돌던 구름이 이제는 걷히는 기분이다.

다시 정리하면 등록된 정비사업자가 부정하게 돈을 받으면 공무원 의제 규정에 따라 형법상 뇌물수수죄로, 미등록사업자의 경우는 배임수재죄로 처벌된다. 배임수재죄의 경우는 벌금형이 가능하나 뇌물수수죄는 벌금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