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유명화가의 작품이 위조인가 여부에 대해 언론에서 관심이 크다. 그때의 ‘위조’와 형법상 문서위조죄에서의 ‘위조’는 그 의미가 다소 다르다. 종종 의뢰인 등이 어떤 문서를 가지고 와서 내용이 엉터리이므로 문서위조죄로 고소하겠다고 기세등등하다. 그런데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바로 문서위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타인의 서명이나 싸인 또는 도장을 본인의 승낙 없이 사용하는 것이 형법상 문서위조다. 또한 이미 정상적으로 작성된 문서의 내용을 함부로 변경하는 것이 문서 변조라고 이해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조합에서도 그 구성원의 다양성과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문서위조·변조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갑(甲)은 어느 상가 재건축 조합의 조합장이다.
해당 조합의 규약에 ‘조합원 한사람에게 아파트 및 상가를 공급한다’라고 돼 있다. 갑은 이사들과 함께 내용 중에 ‘및’ 부분을 두 줄로 삭제하고 대신 ‘또는’이라고 기재한 다음 이를 복사했다. 복사한 사본으로 ‘이 경우 새로  선임된 임원의 자격은 관할 관청의 변경인가를 받아야 대외적 효력이 발생한다’는 부분을 다시 한 줄로 그어 삭제한 다음 이를 다시 복사했다. 임원을 조합에서 쉽게 선임할 목적이었다.

물론 갑은 규약 내용 변경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형법상 문서 변조죄로 차별된다. 다만, 갑은 변경된 문서 원본을 사용하지 않고 복사해서 사본을 사용했으므로 사본의 경우에도 문서위조, 행사죄가 해당되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필자가 사법시험 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사본의 경우 문서 위조.행사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원본만 성립한다는 것이 판례, 통설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1989년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그동안의 판례 입장을 변경해 사본도 문서위조, 행사죄가 성립한다고 결론지었다.

‘복사 문서는 사본이더라도 그와 동일한 원본이 존재하는 것으로 믿게 할 뿐 아니라 오늘날 일상 거래에서 복사 문서가 원본에 대신하는 증명수단으로서 기능이 증대되고 있는 실정에 비춰 볼 때 이에 대한 사회적 신용을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판례변경 이유다.

당시 ‘복사본은 형법 제231조 소정의 「타인 명의로 문서를 작성했다」고 할 수 없어 문서위조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죄형법정주의에도 반한다’는 소수의견이 있었다. 소수의견도 복사본을 문서위조죄로 처벌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생각을 같이 하지만 현행형법으로 처벌하기는 어려우므로 국회에서 별도의 법조문을 만들어 넣거나 기존의 조문을 개정해 복사본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취지이므로 논리적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복사본이 문서위조죄의 대상인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격세지함을 느낀다.

을(乙)은 모 회사의 이사다. 2006년 어느 날 서초동 소재 사법서사 사무실에서 피고인을 포함한 9명의 이사가 모여 이사회를 개최하고 대표이사를 선출했으며 신주를 3만주 발행하기로 결의했다는 내용의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 후 참석자들이 서명하고 실제 참석하지 않은 병, 정, 무(丙, 丁, 戊)의 각 이름을 기재한 다음 막도장을 찍어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했다. 민사소송을 수행중인 변호사 사무실에 이사회 회의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에서는 을을 이사회 회의록중 병, 정, 무에 대한 부분의 위조, 행사죄로 재판에 회부했다. 재판과정에서 병, 정, 무가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실은 확인됐지만 을이 병, 정, 무로부터 명시적 또는 묵시적이라도 회사 대표이사의 선임 또는 신주 발행에 필요한 이사회 개최 시 그 참석 및 의결권 행사에 관한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사실도 함께 확인됐다.

법원에서는 병, 정, 무가 이사회에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한 것처럼 이사회 회의록이 기재돼 있더라도 승낙이 있었으므로 문서위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 선고 했다. 문서위조죄의 핵심은 그 서명 또는 도장의 사용에 대해 승낙을 받았는지 또는 사용권한이 있는지 여부다. 일단 서명의 사용에 대해 사전에 포괄적, 묵시적으로 승낙을 받았다면 그 서명을 대신 했다고 해서 처벌할 수 없음이 상식이다.

이사회 회의록 내용에서 병 등 3명이 참석하지 않았는데 참석한 것처럼 허위기재가 있다고 해서 위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필자가 갑으로부터 돈을 한 푼도 빌린 사실이 없는데 갑에게 1000만원을 빌렸다고 필자 명의로 차용증을 작성해 줬다고 해도 필자를 차용증 위조죄로 처벌할 수 없는 이치다.

이렇게 보면 문서위조죄의 성립여부를 밝히는 일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실제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죄명중 하나가 문서위조다. 문서위조의 고소사건에서는 피고소인에게 문서위조죄가 성립하거나 고소인에 대해 무고죄가 성립돼야 하는 필연 때문에 수사 담당자는 긴장하게 된다. 그러나  판정결과는 양쪽 모두 무협으로 나와 무승부로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현실이 소설보다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