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의 ‘1984년’이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출판년도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세월이 흘러 1984년이 되면 어디를 가나 체제로부터 폐쇄회로로 감시를 당해 사생활이 없어진다는 줄거리다. 지금은 작가가 예상했던 1984년 보다 4반세기가 더 지났다.

얼마 전 사무실에서 신호위반통지서를 받아봤다. 신호기에 설치된 카메라에 찍힌 필자의 차가 분명하다. 필자가 2000년도에 부산고등검찰청에서 근무할 무렵 교차로에서의 교통사고 사건을 처리하던 어떤 선배가 제안했다.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모든 교차로에 카메라를 설치하면 굳이 증거가 있네 없네 고생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그때 필자는 “선배님 아이디어는 좋은데 그 시설비를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지금은 대부분의 주요지점에 과속, 신호, 주차위반 감시 카메라가 여지없이 설치돼 있다.
그 선배의 제안을 반박한 죄로 7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도 신호위반 감시카메라가 설치됐다. 도시정비법상의 관련자료 인터넷 공개 의무가 바로 그것이다.

서울시내의 어떤 재개발구역에서 있던 일이다. 갑(甲)은 2005년 초에 가칭 ‘00구역 정비사업 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위원장이 되고 2006년 9월경 일간신문에 정비사업용역업체 입찰 공고를 냈다. 현장 설명회를 거쳐 그달에 정비사업 전문 관리업자를 선정 후 정비사업 시행 계획서를 작성하고, 주민의견 수렴을 위해 토지등소유자들에게 설문지를 배포했다.

2006년 12월경 구청장으로부터 추진위원회 설립 승인을 받고 활동 하는 과정에서 구청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서를 받았다.
2006년 12월 추진위 설립승인 통보, 2007년 1월 업무추진 관련사항 확인 요청, 2007년 2월 업무범위에 대한 법 규정 준수, 2007년 3월 주민등록 전산자료 이용심사 결과통지, 2007년 4월 업무추진 관련 법규 준수 철저, 2007년 8월 정비기본계획변경 요청에 대한 서울시 회시문 통지, 2008년 1월 운영규정 준수 등 사업추진 철저 등의 문서가 거론 됐다.
2008년 3월 22일부터 인터넷 등에 공개해야함에도 2008년 4월까지 공개하지 않자 토지등소유자들로부터 고발됐다.

검찰에서는 추진위 설립승인 이전의 추진위 구성, 운영부분과 위에 열거한 문서들을 인터넷에 공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갑을 재판에 회부했다.
1심에서는 구청장의 승인 없이 추진위를 운영한 부분에 대해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는 한편 인터넷 공개의무 위반 부분은 무죄를 선고 했다.
우선 인터넷 공개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규정이 2008년 3월 22일부터 시행된 것이기 때문에 ‘시행일 이전에 수령한 공문서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 무죄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시업시행계획서, 관리처분계획서, 회계감사보고서 등에 준하는 정도로 조합원 또는 토지등소유자의 권리 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관한 공문서를 말하는데 위에 열거된 공문서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심에서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인터넷 공개의무위반 부분도 유죄가 인정돼 최종적으로 벌금 80만원이 확정됐다.

1심 무죄부분에 대한 검사의 반박 요지를 보자. ‘인터넷 공개의무 규정이 도입된 입법취지는 정비사업의 투명한 추진과 주민들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추진위 및 사업시행자의 정비사업과 관련된 자료의 공개의무를 명확히 하기 위함이다. 부칙에서 위 규정의 시행을 위해 3개월의 경과규정을 두면서 그 적용범위에 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자료의 범위를 법 시행일인 2008년 3월 22일 이후 수령한 문서로 한정할 근거가 없다. 규정에서 말하는 공문서에는 정비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추진위나 조합과 관련된 대부분의 문서가 포함 된다’는 취지다. 2심에서는 검찰의 반박이유가 타당하다고 검찰의 손을 들어 줬고 대법원도 결론을 같이 했다.

형사법의 대원칙에 ‘형벌 불소급의 원칙’이 있다. 처벌하는 죄의 종류와 형량은 반드시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어떤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행위당시에 이를 처벌하는 법률이 존재해야 하는데 법률을 소급해서 적용한다면 ‘죄형법정주의’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1심은 아마도 형벌불소급원칙의 내용을 다소 혼동한 듯 보인다. 인터넷 공개의무 위반 규정에서 처벌하는 행위는 ‘공개하지 않은 행위’를 말하고 공개하지 않은 행위 자체가 법 시행일인 2008년 3월 22일 이후에 있었기 때문에 형벌의 소급적용과는 무관하다.

문서수령행위자체가 처벌대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서수령일이 법 시행 이전이라 해 이를 공개하지 않아도 좋다면 인터넷 공개의무규정의 입법취지에 반해 이치에 맞지 않다. 인터넷의 위력이 절감되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