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남자 중학교는 개구멍이라 불리는 비밀 출입구가 있었다. 이 개구멍은 문구점으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그 문구점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예쁜 누나가 항상 웃으면서 까까머리 중학생들과 농담을 하곤 했었고, 그 당시 그 누나는 항상 우리들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개구멍을 통한 학생들 출입의 정도가 지나치자 인접한 마당은 어수선해 졌고 결국은 집주인의 항의로 개구멍은 없어졌다. 하지만 여름 방학이 끝나 학교에 가보니 이 개구멍이 있던 자리에 쪽문이 생겼다. 학교에서 인접지 할아버지의 집을 사서 길을 내고 출입문을 만들었던 것이다. 학생들을 위한 학교측의 배려 덕분이었다.

우리위원회에 K씨는 20년전부터 강원도 산골에서 농가주택을 짓고 산길을 이용해 통행을 하고 있었는데 이 주변에 별장들이 하나 둘 들어오면서 차량통행이 잦아지자 이 산길 초입 토지소유자인 H씨가 통행료를 징수하겠다며 통행을 방해하니 이를 해결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해당 군청은 현행 건축법에서는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농가주택을 지으면 건축법상의 도로 규정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건축신고시 도로를 확보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었고, 또한 행정청에서는 도로를 개설할 의무도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위원회는 해당군의 부군수가 참석하는 출석조사를 거쳐 민원인을 포함해 통행로가 필요한 이 일대 토지 소유자들이 자신들의 땅 일부를 통행로로 내놓고, 군청에서 진입 초입의 통행로를 확보하던지, 이와 별도로 진입도로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군청에서 검토해 민원인의 통행에 지장이 없도록 공법상의 도로를 확보할 것을 시정 권고했다.

이와 유사한 민원들이 요즈음 우리위원회에 상당수 접수됐다. 옛날에는 임야나 농지는 땅값이 비교적 싸고 한동네 사람들이라 내 땅 네 땅을 구분하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통행에 필요한 도로가 확보됐으나, 이제는 땅값이 오르고 외지인이 땅을 소유하다 보니 남이 자신의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해 민원이 종종 발생한다.
현행 건축법에서는 도시외 관리지역과 농림지역에서 농가주택을 건축할 때는 진입도로의 확보를 의무화 하지 않다보니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행위허가는 건축법 하나의 법률만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련 법률을 적용하기에 사전에 진입도로를 확보할 수 있다. 즉, 농가주택을 건축하려면 농지법에서는 농지를 대지로 변경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농지전용을 받아야 하고, 산지법에서도 임야를 대지로 변경하기 위해서 산지전용을 받아야 한다. 또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에 의해서 주택 건립을 위해 필지를 분할해야 하고, 전기·하수도·수도 등의 기반시설이 설치 가능한지에 대해 개발행위허가를 득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허가권자인 지자체는 농지전용이나 산지전용, 개발행위 등의 목적이 주택 등의 건립으로 차량의 통행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진입도로 확보를 조건으로 부과할 수 있다. 즉 건축법은 조건을 부과할 수 없는 기속행위이나 농지법과 산지법, 국토계획법은 인허가권자의 재량을 인정하는 재량행위라고 보고 있어 농지전용이나 산지전용, 개발행위 허가시 진입도로 확보 조건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위원회는 군민들을 위해 통행로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고자하는 적극적인 행정행위를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면 다른 법률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합리적으로 진입도로 확보 조건을 부과하면서 행정을 했어야 한다는 의미로 시정을 권고했다.

학생들이 개구멍을 이용해 통행로를 만들었을 때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접주택을 매입해 출입구를 만들고 통행로를 확보했듯이, 인허가권자인 행정청은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국민들의 편에서 민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적극적인 행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