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방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 덮어 간직해 둔 자식을 위한 밥 한 그릇이 생각난다. 화롯불에서 끓어대던 된장찌개의 냄새가 지금도 맡아지고 시루떡 구어서 몰래 먹다 입천장 벗겨졌던 유년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이제 우리는 온돌방의 추억을 잊어가고 있다. 온돌방에서 비롯되었던 온갖 이야기 거리를 아파트에서는 찾아내기가 어렵다.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거주공간의 개념과 축재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는 지역과 브랜드, 평형에 따라서 거래가격이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한국형 특산물이다. 고전적인 정주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여차하면 팔고 떠나는 유목민의 천막으로 변질되었다. 아파트 거주자의 지역에 대한 관심과 이웃에 대한 애착도 당연히 작아질 수 밖에 없다.

최근 지역공동체 붕괴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아파트가 주거공간과 축재 수단으로서의 이중적의미를 갖고 있는 한 현재의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조차도 어렵다. 또 다른 측면에서 아파트는 여성의 사회참여를 보장해주고 남녀간의 성평등을 넘어 여성 주도적 사회로의 진입을 촉진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집안의 구조는 부엌과 식당, 거실등 주로 여성중심공간으로 바뀌었고 이러한 공간적 특성을 기회로 이웃 간의 소통의 창구라고 할 수 있는 반상회등은 여성중심으로 바뀌어졌다. 어지간히 간 큰 남자아니면 남의 집 부엌에 가서 동네의 대소사를 챙길 여유는 없을 것이다.

한편 외국의 경우 아파트는 유지관리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슬럼화가 된다든지, 고립된 생활양식으로 인한 범죄 노출 위험 증대 등으로 각광받는 주거형태는 아니다.

한국에서의 아파트선호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서구화에 대한 동경이 하나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그중의 하나이다. 서구화는 현대화의 다른 표현으로서 현대화로 상징되는 개발 주도적 압축성장기를 살아온 우리들에게 경제성장과 생활 향상의 과실을 안겨준 체제이다. 그래서 서구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분석도 일리 있어 보인다. 특히 급격한 도시화와 늘어나는 도시유입 인구를 수용하기위해 개발시대의 아파트 공급정책은 항상 수요가 공급을 초과함으로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아파트 소유자에게 보장하여 주게 되고 축재 수단이 된 것이 아파트 선호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하겠다. 모든 점을 떠나서 아파트를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으로 자리잡게 하고 정감과 인간미 있는 거주공간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과 시도가 필요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파트가 한국민의 대표적인 주거형태로 자리 잡았다면 이제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습 또한 한국적으로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것이든 일단 한국 땅에 들어오면 한국냄새가 폴폴나게하는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언어가 그렇고 종교도 그렇듯이 한국인의 전통과 정서에 부합되는 한국적 주거공간으로서의 아파트의 진화를 기대한다.

 

온돌방                                             조향미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드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