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지가 계획한 몰래카메라 실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거리의 악사로 변장해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지 2007년 4월8일자 W10면 참조) 거리의 악사는 워싱턴에서 가장 번화한 랑팡플라자 (L'emfant Plaza) 지하철역에서 출근시간인 7시 51분부터 약43분간 6곡을 연주했다. 이 실험 시간 중에 연주자의 앞을 지나간 사람은 정확히 1097명이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만약 1000명이 지나가면 적어도 35명에서 40명 정도는 연주가 얼마나 탁월한지 알아볼 것이고, 약75명에서 100명 정도는 길을 멈추고 잠시라도 들어볼 것이며 돈은 약 150달러 정도 벌 것이라고 예상 했었다.

그러나 이 실험의 결과, 이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동안 단 한명도 발길을 멈추고 서서 연주를 들은 사람은 없었고, 그나마 단 1분이라도 연주에 주목한 사람은 단 7명뿐이었으며, 45분간 거리의 악사가 벌어들인 수입은 단돈 35달러에 불과했다.

이 거리의 악사가 바로 바이올린의 천재 조슈아 벨(Joshua Bell) 이었고, 이 악사가 가지고 연주한 바이올린은 ‘깁슨’이란 약47억원짜리 명기였다는 사실에서 충격을 주었다.

조슈아 벨은 현재 39살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다. 지하철역에서 실험하기 3일전 그는 보스턴의 시립 심포니홀에서 입장권이 100달러가 넘는 연주회를 가졌는데 이를 환산하면, 그는 1분당 약1000달러(120만원)의 연주 몸값을 가진 연주자였다. 그는 음반업계의 아카데미상인 그래미상을 4차례나 수상했으며, 그를 “신과 같이 연주를 한다”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조슈아 벨이 이날 연주한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로 일명 ‘깁슨’으로 불린다.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명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은 과르네리와 함께 세계 최고가를 형성하는 바이올린이다. 조슈아 벨은 이 깁슨을 400만달러(약47억원)를 주고 소유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천재적인 재능과 비싼 명기를 가지고 연주를 해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 전 문화부장관의 말처럼 일반인들은 천재적인 연주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 몰래카메라 실험결과와 같은 일이 우리나라 건축국제현상설계 심사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 사례가 얼마 전 서울시의 상암DMC 랜드마크타워 심사다. 랜드마크타워는 지상133층 높이 640m로 완공되면 세계 3번째로 높은 건물이 되는 것이다.

서울시는 우선협상자로 ‘서울랜드마크컨소시엄’을 선정하면서 보도자료를 통해 “세계적인 건축물이 될 수 있도록 건축디자인, 설계 등을 보완하고, 국제 공모를 시행” 할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이날 선정된 서울랜드마크컨소시엄의 설계안은 초고층 건물 설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의 SOM사가 설계한 것이다. 이 회사의 작품으로는 두바이에서 삼성이 시공 중인 세계에서 가장 높은 버즈두바이와 미국 뉴욕의 9.11테러로 무너진 무역센터자리에 들어서는 541m의 프리덤타워 외에도 우리나라의 제2롯데월드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는 세계적인 SOM의 설계안을 버리고 국제공모를 하라고 한다.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경쟁사가 제출한 설계안도 세계 2번째로 높은 인천타워를 설계한 KFT라는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미국의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계획한 안이다.

심사위원들의 안목과 지식의 깊이가 설계를 제출한 사람들 보다 한참 깊고 넓었기에 심사위원들의 기대에 설계안이 못 미쳤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이날 심사에 참가한 심사위원들의 대부분은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심사에 참여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을 보면 이런 결과와 보도자료에 수긍이 간다.

요즈음 각 지자체마다 명품 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세계적인 건축가를 모셔오라고 지자체가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서울, 경기, 인천, 심지어 평택, 제주에서도 세계적인 건축가가 참여하는 국제현상설계를 준비중이고 세계적 건축가가 참여하는 업체에 가산점을 준다고도 한다.

나는 ‘국제현상설계를 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제출자의 이름을 가리고 하는 심사에서, 과연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위원들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더욱이 심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심사를 한다고 하고 있기에 조슈아 벨의 지하철역 바이올린 연주 실험이 떠올려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