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소재지가 있는 지방의 어느 대도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2000년 9월부터 시행해오는 국가산업단지 개발사업으로 인해 시내 3개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가옥등이 개발지구에 편입됐다. 그런데 시에서 실효성있는 이주대책을 해 주지 않는다고 판단한(물론 시의 입장과 주민들의 입장에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이주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이주택지 용도변경을 관철시키려고 마음 먹었다.
갑(甲)이 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 을(乙) 등 3명이 3개 마을의 각 이주대책위원장, 병(丙)이 이주민대책위원회의 총무로 선임돼 수십차례 시청을 방문하고 각종 민원을 제기해도 주민들의 요구가 크게 반영되지 않는다고 생각되자 주민들 다수가 집단으로 시청을 항의방문하고 시장에게 면담요구를 하기로 결의했다.

먼저 총무 병이 이틀 전에 문자 메시지로 회원들에게 2007년 7월 18일 10시 경 시청앞으로 모이라고 연락해 해당 일시경 시청현관앞에 임원들과 주민 60여명이 집결했다.
시에서도 주민들의 청사내 진입을 예측하고 공무원과 청원경찰등 60여명을 동원해 주민들의 출입을 막으려고 현관문을 잠궈두는 한편 현관안에 공무원과 청원경찰들을 배정해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주민들은 현관앞에서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청사내 진입을 위해 잠겨있는 현관의 유리문을 밀고 흔들다가 일부 주민은 유리문을 발로 차기도 하는 등 약 30분동안 소란을 피웠다.

그 후 시측과 협의해 주민들이 종합민원실 구내식당으로 이동한 다음 시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해산했다.
이후 총무 병이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내 2007년 11월 9일 10시 경 시장실 앞으로 모이라고 연락해 해당 일시에 다시 주민들 60여명이 시장실이 있는 시청 2층 로비에 모였다.

위원장들과 주민들은 2층 로비에 앉아 구호를 제창하며 항의농성을 하고 고성을 지르는 등 약 1시간 20분동안 소란을 피웠다. 일부 주민들은 시장 부속실로 들어가 시장 면담을 요구하다가 공무원들에 의해 시장실 앞 복도로 밀려나기도 했다. 시장 면담은 불발에 그치고 나중에 회의실로 이동해 공무원과 면담을 마친 후 해산했다.

열흘쯤 지난 어느 날 10시 50분쯤에는 주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 및 주민들이 시청 3층에 있는 도시개발사업 소장실에서 도시개발소장등과 면담하게 됐다. 도중에 주무담당직원으로부터 “주민들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말을 듣자 대책위 소속 회원 1명이 “이런 공무원은 죽어야 한다. 빨갱이보다 더한 놈이다”라고 욕하면서 탁자위에 있는 나무 접시로 주무담당자의 머리를 때려 주무담당자가 전치 2주의 뇌진탕에 해당하는 상해를 입기도했다.

시청에서는 주민들의 과도한 항의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해 도시개발 소장실에서의 상해사건을 포함해 앞서의 소란행위 모두를 수사기관에 고소, 고발했다.
검찰에서는 법적 안정성, 공공의 안녕질서를 중시해 시청에서의 소란행위를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소장실 상해행위를 공무집행방해 및 상해죄로 법 적용해서 해당자를 모두 재판에 회부했다.

1심 법원에서도 도시개발 소장실에서의 공무집행방해 및 상해행위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벌금 70만원을 선고했으나, 시청에서의 농성·소란 행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참고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는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여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여기서‘다중’이란 단체를 이루지 못한 다수인의 집합으로서 그에 의해 압력을 느끼게 해 불안을 인식할 정도의 다수라 할 수 있다.
‘위력’이란 다중의 형태로 집결한 다수 인원으로 사람의 의사를 제압하기에 족한 세력을 지칭하는 것인데 결국 행위 당시의 구체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상대방의 의사가 현실적으로 제압될 것을 요하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할만한 세력을 인식시킬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1심 법원에서는 ‘다중’의 의미를 다소 좁게 해석하고 특별한 유형력의 행사나 물리적 충돌이 없었던 점, 위원장들과 주민들이 당시까지 80여차례 시청을 방문했으나 그 동안 위법행위로 고발된 적이 없다는 점을 중시해 피고인들이 다중의 위력을 행사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용산재개발지역의 참사 사태를 계기로 재개발지역의 이주대책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부각됐다.
이주대책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비난을 받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고충이 이해는 가지만 이 사건 판결을 쉽게 지지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자기들 맘에 안 든다고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떼거리로 몰려 와 소란을 피우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업무를 수행합니까. 시장님도 면담할만큼 했으며 현행법으로는 묘책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 나라가 법치주의 맞습니까”라고 외치는 해당시 공무원들의 탄식이 필자의 귓전에 맴돌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죄나 다중의 위력은 아니더라도 일반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할 여지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유죄는 인정하되 실질적으로 처벌하지 않는‘선고유예’를 하는 방법은 없었는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아무튼 2심 판결의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