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수사경험에 의하면 누군가는 처벌을 받아야 할 상황임에도 행정기관 등이 적법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갑(甲)은 서울시에 있는 어느 재건축정비사업조합과 2003년 6월경 전문용역 관리계약을 체결한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체인 A회사의 실무책임자다.

사업시행자인 조합은 1군 건설업체인 B회사를 시공회사로 선정해 공사계약을 체결했고, B회사는 2004년 3월경 철거공사 및 잔재처리 부분을 C회사에 하도급 줬다. C회사는 아직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나지 않은 2004년 12월 중순경부터 해당지구 기존아파트 창틀, 장판, 섀시, 난방배관 등 내부시설물에 대한 해체작업을 시작했다.

해당구청에서는 2004년 12월말경 이 사실을 알고 시공업체인 B회사에 철거공사를 중지하라고 구두로 명령했다.
이어 2005년 1월11일 정비업체인 A회사 및 시공사인 B회사를 상대로 철거공사를 중지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정비업체인 A회사의 직원으로서 정비사업 담당자인 갑은 회사로 도달된 공문을 조합측에 전달했고, 조합은 시공사인 B회사에, B회사는 철거업체인 C회사에 철거공사를 중지하라고 순차 지시했다.

C회사는 2005년 1월11일 B회사로부터 지시받은 다음날 바로 해체작업을 중지했으나 곧 관리처분 인가가 날 것으로 생각하고 2005년 1월20일경부터 기존 건축물의 내부 창틀이나 장판을 떼어 내는 등 철거공사를 다시 재개했다.

해당구청장은 2005년 1월24일 해당조합 및 정비업체인 A회사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검찰에서는 갑에 대해 도정법 제85조 제12호를 적용해 벌금을 구형했다.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은 조합장과 공모해 2004년 12월경 및 2005년 1월11일경 구청장으로부터 건축물 유리섀시 및 난방배관 등 철거공사 작업중지 명령을 받고서도 공사를 중지하지 않아 정비사업 공사 중지명령에 불응했다”는 것이다.

도정법 제77조 제1항에 의하면 “정비사업의 시행이 도정법 또는 도정법에 의한 명령, 처분이나 사업 시행계획서 또는 관리처분 계획에 위반 되었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정비사업의 적정한 시행을 위해 시장, 군수(구청장)는 사업시행자 또는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에게 그 처분의 취소변경 또는 정지, 그 공사의 중지, 변경, 임원의 개선권고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명기돼 있다.

한편 도정법 제69조는 정비업자의 업무범위를 열거(내용생략)하고 제70조 제1호는 “동일한 정비사업에 대해 ‘건축물의 철거’등 업무를 병행해 수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비사업자가 철거공사를 병행하는 것은 위법이다.

“1심에서는 정비업자가 철거중지명령에 대해 최종적이고 전반적인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으므로 철거중지 명령을 고지하면서 중지하라고 지시한 것만 가지고는 철거중지 명령에 응했다고 볼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인 갑에 대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갑은 ①조합장과 공모해 철거공사를 계속한 사실 없고 ②철거공사는 조합과 A회사 사이의 용역관리계약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어서 A회사 또는 갑이 책임질 사항이 아니며 ③구청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뒤 조합에 철거를 중지하라고 수차례 알려 주었으므로 의무를 다했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는 “정비업체인 A회사 담당자 갑이 철거공사를 포함해 공사전반에 대해 최종적이고 전반적인 책임자이거나 철거공사업자에 대해 철거공사를 시행시키거나 중지시킬 수 있는 지시, 감독권한이 있다고 보이지 않고, 갑이 조합장과 공모해 철거공사를 계속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갑에 대해 무죄를 선고 했다.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됐다.
다만, 대법원의 논지는 “정비업자는 철거공사를 병행할 수 없고 실제 용역계약의 범위에 철거공사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구청장이 A회사에 대해 발한 명령은 위법하고 위법한 명령에 따를 의무는 없다”는 취지다.

결국 구청에서의 잘못으로 적정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게 된 사례다.
구청에서는 사업시행자인 조합 또는 조합장을 상대로 철거공사 중지명령을 했어야 하는데 적격이 아닌 A회사 및 시공사를 상대로 중지명령을 했다.

법규정에 의하면 A회사는 철거공사 중지명령의 상대방이 될 수 없고, 조합장에 대해는 중지명령이 존재하지 않아 양쪽 모두 처벌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