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년 새해가 시작됐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로 부터 한국전력이 수십조원의 원전 설비공사를 수주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다.

재개발·재건축에도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재개발·재건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구성요소가 부동산 거래이고, 부동산 거래에서 가장 많이 발생되는 형사범죄가 배임죄다.

 

형법 제356조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배임죄로 규정하고 반드시 기수에 이른 경우 뿐 아니라 미수에 그친 경우에도 처벌하고 있다.

동산매매의 경우에는 대체로 일괄지급 또는 지급 후 잔금지급과 동시에 매매 대상물을 인도하지만 부동산의 경우는 다르다. 부동산 매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약금, 중도금, 잔금의 형태로 대금이 지급되고 잔금과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동시에 주고  받는다.

부동산 매매는 사람의 생활에서 기본이 되는 의·식·주 중 주에 해당하고 거래금액이 클 뿐 아니라 계약금, 중도금, 잔금의 지급과정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거래의 안정을 위해 국가에서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부동산 매도인이 중도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수령한 이상 매수인에 대해 잔금을 지급받음과 동시에 등기이전에 협력할 임무가 있고 그 임무에 위배할 때 배임죄의 성부가 문제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입장이다.

 

부동산 거래에 있어 계약금만 수수된 상태에서는 매도인, 매수인 쌍방이 언제라도 계약금 상당액의 손해를 보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기 때문에 형법상 배임죄의 성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중도금의 전부 또는 일부가 수수된 이상 매도인과 매수인 쌍방은 서로 더 이상 매매계약이 해제되지 않고 성사될 것을 예상해 매도인은 이사할 새집을 구하고 매수인은 살던 집을 팔려고 내놓는다.

이때 매도인이 조금 더 이익을 보려고 제3자에게 매도할 수 있게 한다면 그 불안정성 때문에 부동산 시장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필요 때문에 매도인이 매매대금 중 중도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수령한 이상 해당 부동산을 제3자와 거래 시 배임죄의 성부가 거론된다.
다만, 매도인이 제3자와 매매계약을 체결 시 어느 단계에 이르렀을 때 1차 매수인에 대해 그 임무에 위배 하는지가 문제된다.

 

갑(甲)은 2000년 6월경 소유하고 있던 3층 건물을 을(乙)에게 6억원에 매도하기로 하면서 계약금과 중도금은 을이 위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으로 지급받고 잔금은 소유권이전등기 서류와 상환으로 지급받기로 약정한 뒤 2000년 7월 1일경 을이 위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6억원을 계약금 및 중도금 명목으로 교부받았다.

그런데 갑은 그 해 10월경 병(丙)에게 위 건물을 8억원에 팔면서 계약금 명목으로 5000만원을 수령하고 나중에 중도금과 잔금을 수령한 다음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해 주기로 했지만 중간에 병과의 계약이 해제됐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이중매매의 경우 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한 시기는 제2매수인(병)으로부터 중도금을 수령할 때인데 갑은 병으로부터 계약금만 받았을 뿐 중도금을 받지 않았으므로 배임죄의 실행의 착수가 인정되지 않아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결론 내렸다.

‘실행의 착수’란 범행을 시도한 것을 말한다. 범행을 시도하여 결과에 이르면 기수이고, 결과에 이르지 못하면 미수다.

위와 같이 제2매수인으로부터 계약금만 받은 상태는 범행을 시도조차 했다고 볼 수 없어 미수범으로도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다.
계약은 자유이고 계약금만 받은 상태에서는 언제든 계약을 해제할 수 있기 때문에 갑은 그때까지 을에 대해 그 임무를 위배하지 않고 이행할 수 있으므로 을에게 어떤 재산상 손해를 가할 우려가 없다. 때문에 매도인이 제2매수인으로부터도 계약금 및 중도금(전부 또는 일부)을 수령 했을 때 매도인은 범행을 시도한 것이 되고 그 후 계약이 해제돼 소유권이전등기 단계에 까지 나가지 않으면 배임의 미수죄가 성립하며. 제2매수인에 대해 소유권이전등기 단계까지 이르면 그 시점에서 제1매수인에 대해서는 소유권이전등기에 협력할 임무위배가 확정되므로 배임죄의 기수에 이르게 된다.

갑은 자신의 처가 A에 대해 부담하는 채무의 대물변제 명목으로 갑 소유의 무허가 건물을 A에게 양도했다. 그후 갑의 처가 B에 대해 부담하는 채무의 대물변제 명목으로 무허가건물 대장의 명의를 B로 변경하고 건물을 B에게 인도했다. 제2심에서는 무허가 건물 대장 명의를 넘겨준 것만으로 갑이 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에서는 제2심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무허가건물의 양수인은 양도인으로부터 무허가건물을 인도받아 점유함으로써 소유권에 준하는 사용·수익·처분권을 가지게 되므로 양도인이 중도금 또는 잔금까지 수령한 상태(채무금을 중도금 또는 잔금지급으로 대체)에서 양수인의 의사에 반해 B에게 그 건물을 이중으로 양도하고 중도금까지 수령했다면 양수인에 대한 관계에서 임무위배행위가 돼 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고, 더 나아가 B로부터 잔금을 수령하고 무허가 건물을 인도 했다면 배임죄의 기수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 요지다. 새해엔 건전한 부동산 거래가 더욱 왕성하게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