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령의 미비는 물론 그 위임 범위를 벗어난 조례 등으로 인해 정비사업과 재정비촉진사업에서의 무효·취소 판결이 잇따르고 있어 우려를 금할 길 없다. 특히 이같은 판결이 조합이나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의 잘못이 아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잘못이 크다는 점에서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먼저, ‘구역지정 전 추진위 승인 무효(취소)’ 판결을 보자.
지난해 10월 29일 대법원은 정비기본계획이 없는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 광명마을의 추진위 승인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린데 이어 같은 해 12월 11일 서울행정법원은 행당8구역 관련 소송에서 정비기본계획이 수립된 지역이라도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 전의 추진위 승인도 취소라는 판결을 내렸다.
조합 및 추진위 관계자들은 원주시 학성동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내려질 때만 하더라도 정비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곳이라는 점을 들어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다”고 예상하면서 태연해 했다. 하지만 행당8구역도 취소 판결이 내려지자 크게 당황하는 눈치다. 이들은 “국토부와 지자체가 안이한 행정으로 사태를 키웠다”며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사실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국토부의 성급함이 자리해 있다.
국토부는 지난 2003년 9월 ‘추진위 업무처리 기준’을 발표하면서 정비구역 지정 전이라도 정비기본계획이 수립된 곳이라면 추진위 승인을 할 수 있다고 했고 서울·부산 등 각 지자체가 이 기준을 근거로 추진위 승인을 남발(?)했다. 당시 이 기준을 근거로 승인된 추진위는 전국적으로 60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모두 소송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됐다.
두 번째는 ‘구역지정 요건에 대한 무효(취소) 판결’이다.
지난 2008년 10월 29일 수원지법, 2009년 9월 8일 서울고등법원은 경기도 안양시 냉천·새마을 주거환경개선사업 구역지정 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기도 조례는 구역지정요건을 도시정비법 시행령 보다 완화해 독자적으로 정한 것으로 이는 법령의 위임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안양시는 처음부터 다시 구역지정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이주를 앞두고 있던 주민들은 ‘날벼락’ 같은 판결로 어떤 해보다 추운 겨울을 두 번이나 보내고 있다.
최근에도 이와 비슷한 판결이 났다. 바로 경기도 부천시 원미재정비촉진지구 소사10B구역에서다.
지난 7일 수원지법은 이 구역 주민 400여명이 경기도를 상대로 제기한 재정비촉진지구 지구지정 및 촉진계획 수립 취소소송에서 주민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소송의 쟁점사항은 도시정비법 제2조제3호다목과 시행령 제2조제2항제1호의 해석이다. 앞선 조항들은 노후·불량건축물의 요건을 규정한 것으로 이에 따르면 ‘철거가 불가피한 건축물로서 준공된 지 20년이 지난 건축물’이다.
하지만 경기도는 도시정비조례로 ‘준공된 지 20년’이 지나면 모두 노후·불량건축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경기도가 ‘철거가 불가피한 건축물’에 대한 객관적 조사 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해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이같은 재판부의 태도는 안양시 냉천·새마을 주거환경개선사업구역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로써 소사10B구역 주민들도 상급심 판결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행당8구역의 판결은 재판부가 현실을 잘 모르고 한 것”이라며 “상급심의 판단은 다를 것이다”고 재판부 탓만 하고 있다. 경기도 역시 “현행법상으로는 비슷한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며 “국토부에 법 개정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나 지자체나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보다 ‘남 탓’만 하고 있는 셈이다.
2년 전 국토부 재정비촉진사업 담당자와의 전화통화가 생각난다. 당시 통화에서 국토부 담당자는 재정비특별법령이 몇몇 부분에서 미비한 점을 인정하면서 “법 시행초기 단계에는 잘못된 점이 발견되기 마련”이라며 “고쳐나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법령을 정비하는 동안 받을 주민들의 고통을 “책임질 사람이 있는가”라고 다시 묻고 싶다.
편집국장 강남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