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방화사건과 신문고 이야기

못마땅함, 언짢음, 샘남, 그리움 등의 비정상적인 마음의 발동을 ‘화’라고 한다. ‘화낸다, 화풀이 한다, 화가 치민다’는 화가 마음의 불인 화(火)에서 비롯된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싸우는 아이들을 말리며 아이들에게 지푸라기를 주워 오게 해 불을 피우고, 쬐게 하며 화를 누그러뜨리게 했다. 또 모진 시집살이하는 며느리는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화를 달랬다고 한다. 한편 무당이 정신 나간 사람에게 굿을 하는 방법으로 화나 분을 삭이게 하는 타포(打匏)와 소지가 있다. 타포는 바가지를 엎어놓고 당사자에게 잣대기로 두들겨서 박살을 내도록 해 분을 삭이도록 하는 것이고, 소지는 종이 33장을 한 장씩 태워 재로 날려버리면서 화를 달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 ‘화를 화(火)로써 다스리는 방법을 이화이제(以火制火)’라 한다. 즉, 불은 불로써 다스린다는 뜻이다.
숭례문도 이화이제(以火制火)의 원칙에 의해서 지어졌다. 옛날에는 나무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화재예방이 임금으로써는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다. 수도 한양의 남쪽에 있는 관악산이 불꽃 형상의 화산(火山)이어서 성안에 크고 잦은 불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이 화산인 관악산과 마주 보도록 남대문을 배치, 그 현판을 숭례문이라 했는데, 이 ‘례(禮)’자가 오행(五行)의 화(火)에 해당해 화산과 마주보게 한 것이다. 또 ‘숭례(崇禮)’ 두 글자를 세로로 겹치면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으로 관악산과 일대일 기 싸움을 시켜 ‘불을 불’로써 다스리도록 했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은 사람사이 관계뿐 아니라 건물을 짓는 데까지 이 화(火)를 풀고 분을 삭일 수 있도록 배려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숭례문 방화 용의자는 토지보상 문제로 대통령과 행정기관, 법원에 수차례 진정과 소송을 했으나 해결이 되지 않자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화가 치밀어 방화로 자신의 화를 분출했던 것이다. 불을 주제로 한 영화 ‘리베리메(2000년)’나 ‘사이렌(2000년)’ 그리고 ‘분노의 역류(1991년)'에 등장하는 사회적 불만을 가진 방화범이 자신의 분을 삭이지 못하고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방화를 저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현재 한국사회가 사회적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화와 분을 삭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없다 보니 이번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옛날 신문고 제도는 이러한 사회적 화풀이 시스템 중의 하나였다. 조선 초, 마땅히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사람에게 북을 치도록 해 왕이 직접 백성들의 사정을 듣고 민원을 해결 했던 것. 그러나 이같은 좋은 취지의 제도도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겨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남을 모략하거나 다른 집안을 음모, 비방하는 사건들이 잦아지자 거짓 민원을 제기한 사람을 교수형에 처하는 극단적인 처방을 하지만, 폐단이 사라지지 않자 연산군은 이 신문고 제도를 폐지해버렸다.
이 사회적 화풀이 시스템인 신문고제도가 폐지되자 숭례문 다락에 올라가 종을 치고 고함을 지르다가 유배를 당한 사람이 생겨났고, 봉해둔 신문고를 찢고 북 속으로 들어가 통곡하다 관물훼손죄로 교수형을 당하기도 했다.
옛날 신문고 제도의 폐지로 하소연할 데가 없어진 백성이 숭례문에서 종을 치고 유배를 당했던 것처럼, 이번 숭례문 방화용의자가 일반 생활 고충의 억울함을 하소연할 데가 없자, 이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숭례문을 태워버린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는 그나마 현대판 신문고인 대통령소속의 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총리소속으로 격을 낮춰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폐합하려고 한다.
이번 숭례문 방화사건이 남긴 교훈처럼 그동안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 정부기관 어디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국민의 생활 고충을 해결할 사회적 시스템을 확대 정비해 이번 사건과 같은 불상사가 다시는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이명박정부의 ‘섬기는 정부’가 국민을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