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에서는 당국의 승인없이 추진위원회를 구성 · 운영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이때 무엇이 추진위원회를 구성 · 운영한 것인지에 대하여 도시정비법 개정전에는 명백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 처벌이 쉽지 않았다.
특히 승인없는 추진위 「구성」에 대해서는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와 흡사한 논란이 내포돼 있다.

예컨대, 어느 구역의 추진위원장을 희망하는 자가 추진위원회의 조직을 갖추고 해당구청장에게 승인신청을 했으나 몇 가지 사유로 승인신청서가 반려됐다고 하자. 이 경우 이미 추진위원회는 구성됐다고 보나 결과적으로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하여 이를 처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후 상당기간이 경과되었음에도 승인절차를 밟지 않고 무언가 추진위원회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면 위 법에 의해 처벌이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다만, 국토해양부령인 도시정비법 시행규칙 제6조에 승인신청기간 등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승인절차를 밟을 의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규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따라서, 개정법 제14조제1항에서는 추진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정비관리업자의 선정, 개략적인 정비사업시행계획서의 작성, 조합의 설립인가를 받기 위한 준비업무, 조합설립추진위원회 운영규정의 작성,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서 징구, 조합정관의 초안 작성, 그 밖에 추진위원회 운영규정이 정하는 사항” 이라고 특정시켰다.

개정법 이전에 있었던 하급심 판결례를 들어보자.

K씨는 뉴타운구역으로 지정된 서울시 00구에서 2004년 3월경 추진위원회 위원장 자격을 취득할 목적으로 실제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주민등록만 00구로 이전하여 전입신고를 마치고 도시환경정비조합설립을 추진하면서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를 거쳐 추진위원 20여명을 선출했다.

가칭 00뉴타운 제1구역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K씨 스스로가 추진위원장이 된 것이다. 그 후 2005년 7월경 00구청장 앞으로 추진위 승인신청서를 제출했으나 2005년 9월경 토지등소유자 동의율미달, 추진위원장 자격하자 등을 이유로 승인신청서가 반려된다. 그러자 K씨는 L씨에게 추진위 위원장직을 형식적으로 맡게 하고, 실제로는 K씨가 위원장 역할을 계속 수행했다.

2005년 11월경 추진위 사무실에서 추진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참석자 과반수 의결을 거쳐 해당조합의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로 경쟁입찰에 나선 3개업체 중 하나를 전문관리업자로 선정 했다.

곧이어 정비업체에서 탈락한 업체에 의한 진정으로 수사기관에서 수사가 개시된 결과 K씨는 주민등록을 허위 신고한 혐의(주민등록법 제21조제2항제1호) 및 당국의 승인없이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정비업체를 선정하는 방법으로 추진위원회를 운영한 혐의(도정법 제85조3호, 제13조제2항)로 재판에 회부됐다.

혐의가 모두 인정되어 K씨는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음은 물론이다.

주민등록이라 하니 생각이 난다. 필자가 검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중·고등학교로 진학할 아이들의 학군이 썩 좋지 않아 아내로부터 아이들의 주민등록을 형식적으로 옮기는 것이 어떨지 제안 받은 적이 있다. 공직자로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돼 단념했다. 또 한번은 아내의 대학 후배로부터 학군문제 때문에 그 후배 자녀의 주민등록을 필자의 집주소로 옮겨 놓게 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서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부탁을 들어줄까 아내와 함께 고민하다가 공직자라는 이유 때문에 부득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등록법이 알고 보면 여러 사람을 애먹이는 골치 아픈 법이다.

우리나라에도 인사청문회제도가 도입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런데 이 주민등록 때문에 무수한 장·차관급 공직자 후보 또는 정치인이 인사청문회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중도하차하거나 매스콤을 어지럽게 장식하기도 한다.
재개발·재건축 분야에서도 주민등록법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각설하고, K씨에 대하여는 벌금 100만원이 확정됐다. 일반적으로 벌금형은 신분의 제약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으나 도시정비법은 벌금형과 관련해 ‘조합의 임원’과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를 구분하고 있다. 조합의 임원(조합장, 이사, 감사)에 대해서는 도시정비법 위반의 벌금형 전과로 인한 자격제한이 없음에 반해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는 자격제한을 받는다.

도시정비법 제72조(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의 결격사유)제1항제5호에는 “이 법을 위반하여 벌금형의 선고를 받고 1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자는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의 등록을 신청할 수 없으며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의 업무를 대표 또는 보조하는 임직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 또는 임직원이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벌금형의 선고를 받을 경우 그 벌금형 확정이후부터 1년 동안 해당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필자의 30년 가까운 법조경험 기간 동안 벌금형에 의한 자격제한 규정은 도시정비법이 처음이다.

공무원에 대해서도 벌금형으로 인한 인사상 불이익 등이 있을지언정 신분 또는 자격제한 규정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볼 때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는 뇌물죄에 있어서의 공무원 의제 및 벌금형에 의한 자격제한을 규정함으로써 공무원보다 한층 우대(·)를 받고 있는 셈이다. 정비사업 전문관리업자의 공공성, 투명성을 강조하는 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현실은 어떤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