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신천식(대전대 객원교수 행정학 박사)

어느 결인지 우리는 곡선을 버리고 싶어 한다. 골목길의 구부러짐을 미워하고 도로의 가파른 상승을 못견뎌한다. 해마다 바뀌어가는 하천의 물줄기를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리고, 속도감을 위해 돌아가는 길을 직선화하고자 한다. 돌아갈 줄 아는 여유와 느긋함을 포기하고 조급함과 졸속을 선택한다. 도시는 특히 더하다. 도시의 공간배치는 자연적인 능선을 파헤쳐 평지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단지의 정형화를 위해 주변과의 경계는 일직선의 구획을 선호한다. 우리 역사와 기억 속의 자연지형과 촌락의 모습은, 직선의 잣대에 파괴되고 분할된다. 도시개발을 위한 주거공간의 집단주택의 모습 또한 반듯한 사각형을 겹겹이 쌓아놓은 선과 선의 연장에 불과하다. 조금의 거침도 없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는 선을 그어댈 뿐이다. 직선은 점과 점사이의 최단 거리이기는 하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하는 정서적 체취와 인간적 감성이 머물러야 하는 여지를 없애고 있다. 빠르게 도달하고 나서 잠시 쉬는 것도 아니다. 더욱 빠르게 더욱 많은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일 뿐이다. 보다 많은 여유와 안전, 휴식과 회고를 위한 속도의 매력은 사라져 버리고 우리는 주어진 직선을 따라 노력과 정열을 허비하고 그 결과, 허탈감과 상실감만을 맛보고 있을 뿐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영원히 반복되는 허무한 과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것이 직선이 주는 교훈이다.

대전의 유명한 하천인 갑천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에서 자리를 하게 됐을 때의 느낌은 안타까움과 씁쓸함이었다. 황사경보가 내려진 초봄 오후의 날씨는 삭막함과 을씨년스러움이 더해져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봤을 때의 자연스러운 감동이 떠오르지 않았다. 직강하를 마친 강물은 커다란 어항 속에 갇혀있는 물처럼 현실감이 떨어지고, 직선으로 뻗어있는 하상도로를 달리는 이들의 모습조차도 TV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이들의 모습처럼 다른 세계의 풍경으로 보여 졌다. 제멋대로 자란 나무 한그루 없는 강변은 인공의 냄세만 가득하고, 잘 자라고 있는 잔디가 누렇게 변해 있는 고수부지는 사람의 접근조차도 연출된 모습으로 비추게 할 뿐이었다. 잘 가꾸어지고 단정한 모습 속에서 버려진 야생의 생명력을 애써 찾아보고자 했음은 우매한 개인의 편향적 사고 때문이었을까? 이제 새로운 생태하천조성이 실현된다고 하니 기대해 볼 수 있겠다.

도시의 물리적 공간 배치는 사람이 지닌 이성과 감성의 양면적 측면을 함께 담아 낼 수 있어야 한다. 논리와 이성도 중요하지만 감성과 정서의 본질적 특성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도시의 활기는 공개공지에서의 웅성거림과 소요에서 비롯되고, 상호 대면을 통한 접촉의 빈도와 반복이 도시의 지속과 번영의 기본적 전제가 되는 것이다. 철저하고 완벽한 도시계획은 인간이 지닌 예외성과 가변적 욕구를 무시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의외성과 돌발적 상황 변화까지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도시공간의 배치는 결국 일정부분을 자연에게 위임하고, 용도가 지정되지 않는 공개 공지를 적절하게 안배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점에서 점을 잇는 최단거리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는 곡선의 미학을 존중하는 것일 것이다. 부드러운 곡선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채워주는 여유와 배려인 것이다. 곡선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최상의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곡선의 본질을 이해하고 제대로 존중하는 도시전문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