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식'

노 동 성

국민권익위원회 전문위원

일반적으로 약육강식이 정글의 법칙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영장류의 평화만들기’ 저자 프란스 드 발은 동물의 사회에서 이러한 약육강식의 원칙보다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가진 자의 여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였다.

저자는 붉은 원숭이 2마리를 각각 마주 보이게 두고, 한쪽 원숭이에게는 줄을 잡아당기면 먹이가 나오게 하면서, 줄이 잡아 당겨지면 반대편 원숭이에게는 전기충격이 가해지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자 이 붉은 원숭이는 자신이 줄을 당겨 먹이를 먹으면, 반대편의 원숭이가 전기 충격으로 고통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5일간 먹이를 먹지 않았다. 비록 원숭이지만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이 대신 감내할 줄 안다는 것이다.

또한, 침팬지들 사이에서는 서열의 힘으로 남의 먹이를 가로채지 않는다고 한다. 우두머리 침팬지일지라도 자신이 잡은 먹이만을 먹으며 일부러 힘없는 침팬지가 먹도록 일부를 남겨 둔다. 남을 배려하는 가진 자의 여유를 보는 것이다.

또한 제임스 윌킨스가 1984년 ‘네이처 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남의 피를 먹고 사는 흡혈박쥐는 사냥이 어려워 밤새 돌아 다녀도 이틀에 한번 꼴로 사냥에 실패한다고 한다. 사흘연속해서 사냥을 못해 흡혈을 못하면 죽고 만다. 그런데 동료 박쥐가 사냥에 실패한 박쥐에게 자기의 피를 수혈해 주고, 도움을 받은 흡혈박쥐는 반드시 이를 기억해 은혜를 갚는다. 마찬가지로 기력이 없어 사냥에 나갈 수없는 어미 박쥐를 위해 자식 박쥐는 자신의 피를 어미에게 나누어 주어 보은한다고 한다. 미물 사이에서도 경쟁보다는 서로 협동하면서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

우리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민원 중에 건설과 관련해 대기업 독식을 우려하는 민원이 상당수 제기됐다. 현재 건설 시장은, 중소형 건설업체와 지방의 건설업체는 아예 생존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입찰조건에 건설업 상위 5위 이내 만을 대상으로 현장설명회를 하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가 프리미엄을 보장하는 것이기에 조합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이 발주하는 공사에서 조차도 턴키입찰방식으로 진행하다보니 중소업체는 많은 비용이 드는 턴키입찰방식에 참여할 여력도 없고 또한 실적이 없기에 참여할 엄두조차도 낼 수 없다.

건축설계도 마찬가지다. 대형 설계사무소 몇 군데만이 재건축 조합으로부터 지명을 받아 설계에 참여하고 있고, 정부나 주공 등 공기업이 발주하는 현상설계의 경우에도 로비력과 자본력을 인정받는 설계사무소 만이 현상설계에 참여한다. 그리고 일부 몇 개의 대형 설계사무소만이 대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턴키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 사업에 대기업이 참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조그만 건설 사업까지 대기업들이 수주하거나 자신의 자회사를 만들어 건설 시장을 독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조합장의 비리를 폭로하거나 조합 운영의 불투명성, 비민주적 운영 등을 문제 삼는 민원들이 종종 있다. 조합원 전체의 공익과 조합원의 알권리를 위해서 민원을 제기한다고 하지만 이면에는 건설사가 개입돼 사업장을 가로채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하나의 재건축 또는 재개발사업장에서 사업이 완료 될 때까지 법원 송사에 연류되는 건수가 평균이 10건이 넘고, 조합장은 평균 3명이 교체된다는 통계가 있다. 이를 보면 재건축·재개발사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이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무한 경쟁시대라고는 하지만 힘 있는 몇몇 대기업들이 건설시장과 설계시장을 모두 독식해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양극화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동물의 세계에서도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자신이 이를 대신 감내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가진 자의 여유가 있다는 사실과 △우두머리는 절대로 남의 먹이를 가로채지 않고 △힘없는 자에게 자신의 피를 나누어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