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민감하면서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 재개발·재건축사업이다. 그래서인지 관련법령인 ‘도시정비법’이 수시로 개선·보완되고 관련정책사항 또한 다종다양하다.

정부는 지난달 13일 도시정비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매우 의미 있는 제도개선을 했다. 재개발·재건축 추진위원회 설립을 위해 제출하는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서를 법정 양식으로 하고, 행정청으로부터 연번을 부여받은 것만 사용토록 한 것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준비 중이거나 진행 중인 곳에서 추진위 승인을 받기 위해 ‘가칭 추진위원회’ 또는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하고 일부 동의서를 사고팔기도 하는 부작용이 비일비재했던 사실을 아는 이라면 이번 제도개선이 얼마나 중요한 조치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비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조합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법정양식·연번이라는 틀을 정했으면 필요한 실무사항들에 대한 조치가 뒤따라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하게 개선된 제도라도 현실적으로 논란만 불러일으킨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개정내용을 정리해보면, 추진위원회 설립 동의서는 시행규칙 별지서식(제2호의 2)에 따르며 시장·군수는 토지 등 소유자로부터 동의를 얻으려는 자에게 동의서에 연번을 부여해 제공토록(규칙 6조2항) 했다. 또 동의서에는 추진위원장, 감사, 부위원장, 추진위원을 기재하고 토지등소유자로부터 동의를 받도록 개선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를 위한 후속조치는 없다.

동의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칭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동의서를 50% 이상 징구하고 추진위 구성에 성공하면 그동안 쓴 많은 비용을 보전 받을 수 있지만 실패하면 투입된 비용을 회수할 길이 없어진다. 결국 가칭 추진위원회는 동의서 징구에 사력을 다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개연성이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지침 등 후속조치를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문제를 심도있게 검토해야 한다.
첫째, 토지 등 소유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구역에서 가칭 추진위원회가 난립할 경우 연번부여 동의서를 어떻게 발급할지에 관한 문제다. 일부 구청의 경우 가칭 추진위원회별로 연번을 부여해 준다는 방침을 세워둔 곳도 있다.

둘째, 발급대상의 문제다. 즉 아무나 요구하면 발급할 것인지 아니면 일정한 요건을 갖출 경우에만 발급할 것인지, 이때 그 요건은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발급대상은 정부가 방침을 정해 어느 정도 실체를 갖춘 경우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발급비용 뿐 아니라 관리 부분에서도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셋째, 동의서 중 위원장, 감사, 부위원장, 추진위원을 기재한 상태에서 연번을 부여할 것인지의 여부다. 이 부분을 공란으로 하고 동의서를 징구하면 무효인데, 공란으로 발급해주면 동의서를 걷는 측에서 공란으로 걷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50%의 동의서를 걷었는데 다른 경쟁자가 추진위원 1명을 매수해 사퇴시키면 그 동의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하지 않으면 추진위원회 구성이 불가능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동의서에 기재된 추진위원이 바뀔 경우의 처리방법을 정해야 할 것이다. 동의를 받을 때 추진위원장만 기재하고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넷째, 동의서 접수 시기의 문제다. 얼마 전 모 가칭 추진위원회가 동의서를 50% 이상 징구해 제출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 동의서를 넣어 둔 금고를 도둑맞은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조합설립에 있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웅변해주는 에피소드다. 이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동의서를 징구할 때마다 접수할 것인지, 아니면 50% 이상 동의서를 가져와야만 접수할 것인지를 규정해줄 필요가 있다.

이밖에 동의서 훼손·분실 시 재발급 요청 횟수, 동의서 발급비용(당연히 행정청이 부담해야 한다), 발급 시기 및 순서 등에 대해서도 명확한 지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당국은 이들 문제를 해결키 위한 지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현재 이에 대한 법의 위임이 없으므로 위임규정을 둬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