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제정할 때는 법을 만드는 필요성이나 어떠한 목적이 있다. 보통 이것을 입법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법 규정 하나하나마다 입법취지를 모두 담아둘 수는 없다. 따라서 법조문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입법취지와 다르게 해석되고 집행될 수도 있다. 때로는 대법원 판결을 통해 법집행의 잘못이 바로 잡히고 입법취지가 되살아나기도 한다.
종래 시공자로 선정되기를 희망하는 건설업체에서 특정 재개발, 재건축조합 또는 추진위원회의 업무를 지원하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이하 정비관리업자)에게 수억원의 금전을 무이자로 빌려주고 나중에 회수하는 것이 관례화된 시절이 있었다. 돈을 빌려준 건설업체가 시공자로 선정될 경우 정비관리업자가 차용한 돈을 반환하지 않고 대가로 취득하기도 했다.
이때 우선적으로 문제되는 규정이 도시정비법상의 공무원 의제규정과 뇌물죄다. 정비관리업자는 공무원으로 의제돼 직무와 관련해 금품이나 이익을 취득할 수 없다. 그런데 시공자 선정은 조합의 업무이고 또한 조합의 업무를 대행하는 정비관리업자의 직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와 관련해 금품 기타의 이익을 취득하면 당연히 뇌물죄가 성립한다.
한편, 건설산업기본법에는 ‘도급계약의 체결 또는 건설공사의 시공과 관련해 발주자, 수급인, 하수급인 또는 이해관계인은 부정한 청탁에 의한 뇌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공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이해관계인’에 정비관리업자가 포함되는지에 대해 해석상 견해가 갈린다.
정비관리업자가 이해관계인에 포함된다고 해석되면 앞서 말한 정비관리업자는 뇌물죄에도 해당하고 동시에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에도 해당하게 된다. 포함이 안된다고 해석되면 그 반대다.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더 많은 듯하다.
지방의 대도시에서 있었던 실제 사안에 대해 검찰에서는 정비관리업자도 이해관계인에 포함된다고 해석해 뇌물죄와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죄를 동시에 적용해서 재판에 회부한 적이 있다.
“2007년 6월경 정비관리업체에서 관리하는 재개발·재건축구역의 시공자 선정과 관련해 건설업체인 A주식회사가 입찰에 참가할 수 있도록 입찰조건 등을 유리하게 해주고 조합이나 주민들에게 A회사를 좋게 홍보하는 등으로 시공권 수주에 도움을 달라는 취지의 부정한 청탁을 받고 이를 약속한 후 그 대가로 1억원을 교부받아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함과 동시에 도급계약의 체결 및 건설공사의 시공과 관련해 부정한 청탁에 의한 재물을 취득했다”는 것이 공소사실의 요지다.
이에 대해 1심과 2심 법원에서도 모두 유죄가 인정됐다. 1심, 2심 법원에서도 정비관리업자가 이해관계인에 포함된다고 법을 해석한 셈이다.
대법원의 견해는 달랐다.
“건설산업기본법의 해당 규정을 발주자, 수급인, 하수급인, 또는 이해관계인이 건설공사의 수주, 시공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형사 처벌함으로써 공사수주 및 시공에서의 부조리를 근절해 부실시공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 건설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렇게 볼 때 건설산업기본법 상의 이해관계인이라 함은 건설공사를 도급 또는 하도급 받을 목적으로 도급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경쟁하는 자로서 도급계약의 체결 여부에 직접적이고 법률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자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비관리업자는 정비사업의 시행을 위해 필요한 업무의 대행이나 지원을 위탁받거나 이에 관한 자문을 할 뿐이므로 이해관계인이 아니다”라는 취지다. 덧붙이면 정비관리업자는 간접적이고 사실상의 이해관계인은 될 수 있어도 직접적이고 법률적인 이해관계인은 될 수 없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렇게 간단한 규정 하나를 놓고도 법률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차 해석이 다르니 변호사 해먹기(?)가 쉽지는 않다.
의뢰인들이 대법원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1심에서 패소하면 변호사가 실력이 없거나 재판부에 로비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단정하고 사임을 요구한다. 선임료를 돌려달라고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재판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3심까지 심급을 마련한 이유에 대해 설명해 봤자 마이동풍이다. 건설산업기본법과 정비관리업자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다.
